<고운석 칼럼>대한민국 정말 고맙습니다


입력시간 : 2016. 07.28. 00:00


사상은 인간을 노예 상태에서 자유에로 해방시키고, 정치는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한데 지구상에 독재 정부를 이끌고 백성을 나락으로 내몬 곳이 있다.

“혹시, 그때 북에서 내려온 생존자를 만날 수 있습니까?” 한 모(58)씨가 지금은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름이 바뀐 중앙합동신문센터의 조사와 하나원 수료 직후 자신을 담당하던 국가정보원 직원에게 한 첫 질문이다.

국정원 직원은 “살아서 내려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그때’는 1997년 5월 초의 일이다.

남한에 전혀 안 알려진 그 때 북한에서 무슨일이 있었을까. 북한이 식량난이 극에 달해 200~300만 명이 굶어죽던 시절이라 한씨가 지도원으로 근무하던 군부대도 나름대로 어선들을 구해 예성강 하류에서 실뱀장어를 잡는 돈벌이에 나섰다. 그런데 느닷없는 봄 폭우로 예성강 저수지의 물이 순식간에 불어나 수문을 열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밤새 발생한 일이라 윗선에 보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만수위 직전 갑작스럽게 수문을 열어 어선들이 대피할 시간이 없었다.

예성강 경비용 철다리 위쪽 갯벌엔 어선 40~50척이 정박해 있었고, 배 안에 평균 대여섯 명의 어부들이 굶주림과 피곤함으로 곯아떨어져 있었다.

수문이 열림과 동시에 인민군에 비상이 통보됐다. 내용은 어선과 조난자 구조가 아닌 “한명도 남조선으로 살려서 보내지 말라”는 것이었다. 명령에 따라 기관총, 수리탄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인민군은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어선과 어부들을 조준 사격했다.

한씨는 자신이 관리하던 어선 5척과 선원 25명이 모두 사라졌다고 했다. 얼추 계산해도 200명이 넘는 인명 피해다.

한씨는 “단 한 명이라도 살아서 남조선으로 갔길 기대하고 왔는데…”라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한씨는 그 사건이후 체제에 환멸을 느껴 탈북을 결심했다고 한다. 한씨는 2014년 8월 14일 그때 그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수영 못하는 20대 아들을 밧줄에 연결해 탈북했다. 바다를 건너는데 7시간이나 걸렸다.

강화에 닿기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막판에 도저히 손을 내저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자식만은 살려야겠다는 심정으로 악착같이 힘을 내 천신만고 끝에 생명의 땅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한씨는 지난해 5월 초 강화교동도 해병대를 찾았다. 자신을 구해준 교통부대에 고마움을 표하고, 1997년 예성강 하류에서 몰살당한 북한 어민들의 원혼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부대장의 협조로 북녘이 손에 닿을 듯한 해안까지 가서 준비해 간 제사상을 올릴 수 있었다.

18년 동안 한과 응어리로 맺혀있던 마음의 빚이 어느 정도 사르라지는 느낌이었다. “남쪽으로 가면 모두 사살한다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은지라 두려웠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를 처음 발견한 해병대 병사는 온몸에 감탕(갯벌의 진흙)이 묻어 사람인지 귀신인지 모를 몰골을 한 우리 부자를 보자마자 꽉 껴안아 주었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체온증으로 다 죽어가던 우리 부자에겐 혈육의 정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품의 온기가 느껴집니다.”

고마움과 설움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해병대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마친 한 씨는 목숨을 구해준 작은 보답으로 강연료를 사양했다. 한씨는 지난 6일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귀순 이후 네번째다.

현충원을 처음 찾은 것 지난해 6월 20일. 승용차를 구입한 바로 다음 날이다.

“우리 부자를 받아준 대한민국에 감사드리고, 폐허속에서 세계 10위권의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북한 인민들에게도 같은 민족으로서 자긍심을 심어준 영령들께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중고지만 살아 생전에 내 차를 가진다는 것이 북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거든요.”

한씨는 북에서 박정히 전 대통령을 철천지 원수라 했는데, 현충원에 가면 묘소를 꼭 찾는다고 했다.

참배해야 곡해했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씻으니 개운하단다. “심장이라도 빼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대한민국, 정말 고맙습니다.”

고 운 석<시인>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이 기사는 파인뉴스(http://www.xn--vg1b002a5sdzq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파인뉴스.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