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석 칼럼>미암과 여류 시인 송덕봉 입력시간 : 2018. 08.16. 00:00
허나 덕봉을 안 이호민이 유희춘의 ‘사상’을 쓰면서 덕봉에 대해 “타고 난 성품이 명민하고 경전과 역사서를 섭렵하여 여사(女士)의 기풍이 있다”고 회고했다. ‘여사(女士)의 기품’은 학덕이 있고 행실이 선비처럼 어진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실제로 덕봉은 각종 경전과 역사서를 두류 섭렵하였고, 한문·한글 편지를 격식에 맞게 쓸 줄 알았으며 시작(詩作)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현재 전하는 덕봉의 한시 작품은 대략 25수이다. 덕봉의 한시는 1571년 3월에 일종의 시집으로 묶어진 적이 있었다. 모두 38수가 수록된 이 시집은 유희춘의 명으로 덕봉의 조카 송진이 종이를 붙여 만든 첩책에 손수 쓴 필사본이었다. 그러나 이 시집은 불행하게도 원본이 전해지지 못하고, 산일된 채 ‘미암일기’ 말미에 후인의 필체로 약 25수가 적혀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히 눈에 띄는 詩 한수가 있다.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동해는 거울처럼 끝없이 펼쳐있구나/부인의 몸으로 만리길 어이왔는가/삼종(三從)의리 중하니 이 한몸 가벼운 것을’. 1560년 송덕봉(1521~1578)은 지금의 함경남·북도를 가르는 고개를 넘었다. 시어머니 최씨의 3년상을 마치고, 함경도 종서에 귀양 살고있던 남편 미암 유희춘(1513~1577)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미암은 대략 11년간의 일기를 기록한 ‘미암일기’(보물 제260호·현재 전남 담양 미암유물전시관 소장)를 남긴 16세기 호남 사림의 대표적인 인물. 그 고개에서 ‘마천령을 넘으며’라는 시로 소회를 표출하였다. 남편은 을사사화에 연루, 그곳에서 19년간 유배되었다. 섬김의 대상이 아버지, 남편 그리고 자식으로 이어지는(여자에게 부과된) 의리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덕봉의 외할아버지 이인형은 ‘매창월가’라는 가사작품을 지었다. 정극인의 ‘상춘곡’과 더불어 조선 중기의 대표적 가사로 평가받고 있다. 부친인 송준은 사헌부 감찰과 단성 헌감을 지낸 인물로, 집안에 흐르는 문학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 덕봉은 남편의 부재에도 시모의 장례와 삼년상, 자녀교육과 혼사, 노비관리와 살림을 책임졌다. 유교적 윤리의식에 토대한 가정 경영의 당당한 주체였다. 남편은 덕봉을 ‘지음(知音)’이라 했다. 학문적으로도 ‘동료’였다. 남편의 저술작업에도 내조하였다. 남편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편지의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남편이 풍악과 여색을 멀리한다고 편지하자, 덕봉이 ‘궂이 편지로 자랑하니 겉으로 인의를 베푸는 척하는 폐단과 알아주기를 서두르는 병폐가 있는듯’하다고 답한 바 있었다. ‘남녀’의 유교적 질서 속에서도 덕봉은 남편과 ‘대등’했다. 덕봉은 신사임당(1504~1551)보다는 17년 뒤에 허난설헌(1563~1589)보다는 42년 먼저 태어났고, 황진이와 함께 ‘조선 4대 여류 문인’이다. 앞에서 기술했듯 덕봉은 최초로 문집을 낸 ‘여류문사’. 남편이 엮어낸 그 문집은 분실되었다. 하지만 ‘미암일기’ 등에 덕봉의 작품 등이 일부 전하고 있다. 그러한 글들을 ‘덕봉집’이라고 다시 묶었다. 조선대 한국고전번역센터 안동교 선임연구원이 이 작업을 해냈다. 이 덕봉집의 서문을 김충호 선생이 짓고, 문희순·안동교·오석화 세 연구자가 번역(심미안 간)했다. 이와함께 ‘조선시대 홍주 송씨가의 학술과 생활’이라는 연구서도 함께 출간(심미안 간)했다. 이종범·이성임·문희순·김덕진·권수용·정재훈 연구자가 참여, 조선대 고전연구원 학술총서 첫권으로 2012년에 발간했다. 송덕봉은 16세기 유교적 여성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으로 배운 덕복들을 일상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했던 실천적 지성인이라 평가했다. 오늘날 ‘양성평등’의 시대에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상을 선구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미암은 해남에서 그의 처가(홍주 송씨)가 있던 담양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한데도 잘 알려지지 않아 선지 미암유물전시관을 찾는 이가 드물다. 가사문학의 메카로 알려진 담양군은 전시관도 알릴겸 여류시인 송덕봉의 날을 제정하면 빛날 것 같다. 담양은 충효는 물론 먹거리 볼거리까지 많기 때문이다. /고 운 석 <시인>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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