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評] 4.15 총선은 ‘노사모'와 국민의 승리!

촛불 혁명에 이어 50대 국민의 대 혁명인 4.15총선....


입력시간 : 2020. 04.19. 00:00


노사모’는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약자이다.

4.15 총선이 남긴 기록은 ▲코로나19 사태 속 전 세계 첫 '전국 선거'▲사상 첫 만 18세 고등학생 유권자 투표 ▲1996년 15대 총선 이후 '최고' 투표율 ▲민주화 이후 첫 '180석' 수퍼 여당 탄생, ▲여성 의원 57명..헌정 사상 가장 많았다.는 것이다.

이제 故노무현 대통령은 편안이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盧武鉉)은 1946년 9월 1일 출생하여, 2009년 5월 23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본관은 광주(光州)이고, 경상남도 김해에서 출생했다.

그가 서거한, 11년만에 故노무현의 추종 세력인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세력인 현재의 정부와 국민이 그의 한을 풀어주는 날이 4.15 총선이 있던 승리의 날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4.15총선에서 50세대들이 노무현을 그리며, 문재인 정부를 위해 민주당에게 대승을 안겨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자도 당시 1999년 노사모의 일원으로서 광주시 남구에서 활동을 했고, 구의원에 출마했던 시절이 있었다.

5월은 노무현을 그리는 추모의 달이며, ‘노사모’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달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노무현은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서 군사독재 정권 치하에서 인권변호사로 맹활약 하였으며 양심수, 노동자의 인권옹호와 권익신장을 위해 헌신했으며,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인 6월 민주화운동(1987)의 주요 지도자로 활약했다.

42세 때 정계에 입문한 뒤 그는 민주민족세력의 정치적 대변자로서, 노동자, 농민, 도시 영세민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옹호자였으며, 군사독재의 유산인 영, 호남 간 지역대립 극복을 위한 동서화합의 전도사를 자임하며 남다른 정치 역정을 걸었던 훌륭한 사람이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이자 한국 사회의 비주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2002년 21세기 첫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며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그였다.

퇴임 후 정치활동을 접고 고향 김해의 봉하 마을로 내려가 생활하다가 재임중 친인척 수뢰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중 수사망이 좁혀오자 모든 것을 안고 사저의 뒷산에서 투신하여 서거하였다.

그렇다면 다시 ‘노사모’에 대해 언급을 할 필요가 있다.

노사모는 2000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 노무현을 지향하여 만들었던 팬클럽의 단체였다.

노무현이 2002년 12월 19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에 시민 사회운동을 벌여 나가고 있었으며, 2019년에 해산하였다.

그리고 노무현 재단이 탄생했고, 이사장에 유시민이 선임되어 현재 활동을 하고 있으며, 유시민 이사장은 이번 4.15 총선에서 180석을 예언한 바 있다.

이렇게 노사모는 재단으로 발전하면서 당시의 비서실장인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 지금에 이르고 있었으나 보수진영의 발목잡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이제는 해방된 政局(정국)의 국면에 서게 된 것이다.

노무현의 못 다한 길을 가기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무조건적 반대와 퇴진에 앞장 선 무리들에서 국민은 180석의 의석을 안겨 준 것이다.

따라서 이번의 국민적 대 화합으로서 승리한 민주당은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될 것이며, 이낙연 당선자를 중심으로 재집권하는 그날까지 민주당은 겸손을 결코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최재승[파인뉴스 대표.論客]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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