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판기의 고사성어 빈자일등(貧者一燈 )

"가난한 자들의 작은 등불 되어"


입력시간 : 2007. 03.09. 00:00


고향에서 농민운동을 하는 후배가 아주 작은 책 한 권을 보내왔다. 가난한 화전민들의 잠들어 있던 영혼들을 깨우기 위해 행동으로 온몸을 불태워 하나의 등불이 되어 일생을 살다간 성자 이세종님을 읽고 아침 일찍 그를 찾아 길을 나섰다.

화순군 도암면 등광리. 무등산 자락이 힘을 잃고 늘어진 끝자락에 붓끝처럼 우뚝 솟은 천태산 중턱 작은 움막이다. 그곳을 지키는 허름한 옷차림의 목사님은 화선지에 붓글씨를 쓰다말고 길손을 반긴다. 성자 이세종에 대하여 묻자 “한국 교회사나 역사에 이세종이란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죠”라고 시작한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성자 이세종은 가난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나이에 부모를 잃고 남의 집 머슴을 살면서 억척스레 돈을 모아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거드름을 피우며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그는 나이 40세가 되어 예수를 알고부터 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담보로 잡았던 집과 땅문서를 모두 불살라 버렸다. 또 창고에 가득한 곡식과 재물들, 그리고 100여 마지기가 넘는 토지를 주위의 가난한 자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가난을 선택했다.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텅 비워야 그 안에서 메아리가 울린다. 텅 비워야 거기에 새로운 것들이 들어갈 수 있다”며 “텅 비어 있을 때 그 단순한 충만감이 생겨, 그것이 하늘나라여” 라고 가르치며 누더기옷에 쑥범벅을 먹으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철학자 유영모와 최홍종 목사는 청빈을 실천하는 그를 흠모하여 화학산 각시바위 너머에 있는 움막을 찾아 그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이렇게 청빈의 길 사랑의 길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던 호세아를 닮은 성자 이세종은 생을 마감하면서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내 사진 하나, 나에 대한 기록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게”라며 고독한 들꽃처럼 짧고 굵은 생을 마감했다. 이세종굩 그는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성경 말씀을 행동에 옮긴 하나의 등불이었다.

말을 마친 목사님은 텃밭에 얼굴을 내민 곰밤부리 풀을 바라보며 “이놈들은 때가 오면 어김없이 새싹이 나오는데 세상을 사는 인간들의 찌들은 영혼에서는 언제나 새순이 돋아날지…”라고 혼잣말했다. 민판기 <금계시문연구회장>

파인뉴스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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