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경로석
이정재 칼럼
입력시간 : 2008. 11.05. 00:00확대축소


가끔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을 때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본다. 자가 운전을 하면서 느끼지 못한 편안함과 작은 해방감이 느껴진다.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이 신선한 느낌을 준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세대는 다양하다. 부모를 따라나선 작은 꼬마에서부터 많은 세월을 함께 한 나이드신 어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어찌 보면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한 곳에 있는 듯하다.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이야기도 관심거리다. 듣지 않으려 해도 커다란 소리로 주고받는 이야기에 신경이 써진다. 작지만 진솔하고 아름답고 슬프고 답답한 이야기가 거침없이 오고가는 선량한 서민들의 작은 공간이라고나 할까?

요즈음 버스 속의 노란 카바 속에 쌓인 자리가 유난히 눈에 뜨인다.

‘경로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 자리의 주인은 이 사회를 위해서 일하고 젊음을 바쳐서, 사회라는 텃밭을 일구고 가꿔 놓으려고 세월을 보낸 분들의 자리이다.

금빛으로 빛나는 자리를 마련한 ‘경로석’이라는 자리, 어떤 분들의 아이디언지 참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요즈음 사람들의 수명이 연장되면서 노인들을 위하고 생각하는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런데 아름다운 취지에서 만들어진 ‘경로석’을 생각 없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젊은이들을 볼 때 가슴이 답답하고 예절 교육의 필요성을 새삼스레 느낀다. 그렇다고 노인들이 앉으시도록 일어서라는 말을 하기엔 민망함이 앞선다.

적당히 모른체하고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하는 젊은이들 옆에 서 계신 노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

물론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지쳐있고, 피곤하여 서 있을 힘이 없는 피곤한 서민들이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도 있으나 힘없는 노인들이 옆에서 힘겹게 서 계시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있는 모습은 안돼 보이고 답답해 보인다.

우리 사회가 경제성장, 발달된 의술 등으로 장수사회로 변화되고 있다.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는 점을 감안 할 때 그들을 위한 정책적인 계획이나 인간적인 배려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들에게는 일시적인 도움보다는 그들의 능력이나 인력을 사회에 활용할 수 있는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핵가족제도의 문제 등으로 이제 노인들도 일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가까운 나라의 예를 들면 음식점에서 노인들이 물과 음식을 갖다주는 일을 한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일거양득이라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이 음식을 주시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노인들에게도 일자리와 사회의 일원으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정신적인 위로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식당에서조차 젊은 사람만을 고집하는 우리 나라와는 비교되는 이야기이다.

노인들을 공경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대중 교통인 버스 속의 노란 자리에서부터 길렀으면 한다.

버스 속에 ‘경로석’을 늘 비워두고 노인들을 맞이하듯, 우리들의 마음속에 그들을 존경하고 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로석을 마련했으면 한다.

이정재 <전 광주교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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