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아는 바와 같이 구름과 학은 십장생 가운데 든다. 이 그릇을 쓰는 사람들에게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도공의 무량한 기도가 바로 운학 문양을 넣은 손길인 것이다. 포류 수금문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부들과 버들은 늘상 함께 하는 수초요, 수목이다. 이른바 바늘과 실 같은 존재이다. 아울러 그 두 조화의 세계에 빠져서는 안 되는 약방의 감초격이 바로 수중 생물인데 그 가운데서도 비를 부르고 화합을 상징하며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것이 다름 아닌 오리였다. 솟대에 오리를 새긴 광경을 익히 보았을 터이니까…. 그렇다면 조물주가 남도에 백설을 내린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가뭄으로 시름하는 농민과 음료가 부족한 먼 도서민들의 근심을 풀기 위함일 것이다. 오십풍우(五十風雨)란 말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오일에 한 번 비 내리고 십일마다 한 번씩 바람이 불어야 풍년이 든다는 옛 말이 있다. 조물이 눈 내린 그 다음 마음은 담아두려는 것이었으리라.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호리병에 담아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였듯이 모두 담아서 가두려는 심사가 아니었을까? 부조리, 부정부패, 가난, 설움, 실업, 차별대우, 모순 등등 온갖 마뜩하지 못한 것들을 모조리 담아서 영원히 가둬두려는 저 안쓰러운 조물의 마음이 연이틀 대설을 퍼부어 듣도 보도 못한 문양과 크기의 백자 항아리를 빚고자 하지 않았을까. 한 밤 부족타고 이틀씩이나 내리 백자 항아리를 구우려는 그 마음대로 기축년 내년엔 위대함, 건강함, 깨끗함, 정정당당함, 취업 그리고 행복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가 춥다고 허리를 구부리고 아장거릴 때 옥구슬 같은 땀방울로 항아리를 구운 저 조물의 수고로움이 분명 내년 기축년은 ‘기’가 팔팔하고, 축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리라 기원해 본다. 명심보감이란 책에는 하늘이 개인에게 부여하는 악을 담는 그릇이 있다면서 만약 어떤 사람이 그 것을 다 채워버리면 하늘이 달리 구원의 방법이 없어 그만 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다는 말이 있다. 참 너그러운 듯 무서운 말이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은 악행이 얼마나 될까? 하늘이 허용한 크기는 과연 얼마쯤 인지…. 사람이 살다 보면 악의 아닌 악을 저지르는 경우가 어찌 없겠는가마는 눈뜨고 코 베어가는 상식 이하의 행동은 악의 가득한 악행이 분명 하잖는가? 악의 가득한 악행이라, 볼지어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하자는 속담의 속뜻을 아는가? 쥐하고 새만 모르고 사람은 누구나 다 아는 비밀 같잖은 비밀의 모순을...이 세상에 비밀이 과연 있을까? 시인이 혼자 은밀하게 써놓은 시조차도 이러쿵 저러쿵 다 발기발기 밝혀놓는 세상인데, 더 이상 무엇을 감춰둘 수 있다고 착각들 하는지 도통 이해되질 않는다.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신문 기사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허전하고 씁쓸함을 떨칠 수 없으니, 읽고 나면 뭐 신나는 기사가 더 많은, 그런 새해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한 밤 부족타고 이틀 내리 백자를 구운 당신, 내년이 몹시 기다려집니다. 맨살의 백자향이 밀물로 차올라 자궁 속 보름달빛처럼 환하온 남도여, 이제부터는 그대 화합되고 청정한 이 땅의 ‘보금자리’ 되시기를 새해 소망으로 빌면서….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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