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 박사는 마한사람이다 ?"
6세기 초까지 마한 존속 했다.
"왕인 박사는 5세기 渡日”설
입력시간 : 2009. 02.04. 00:00확대축소


"왕인 박사가 백제인이 아닌 마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영진(전남대 인류학과) 교수는 박광순 전남대 명예교수 등과 공동 집필한 ‘고대영산강 유역과 일본의 문물교류 공동 논문집’에서 “5세기 초에 천자문 등 선진문물을 갖고 일본으로 건너간 왕인 박사가 백제인이 아닌 마한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왕인박사 논의에 대한 고고학적 고찰’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고고학적 사료로 미뤄 백제가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때 영산강 유역의 마한을 복속 했다는 기존학설과 달리 6세기 중엽까지 마한이 존재했다는 것이 사실(史實)로 드러나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그는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추정되는 5세기 초는 영산강유역에서 30∼40m에 달하는 거대한 고분이 축조되는 등 문화가 번창하면서 일본과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던 시기다”며 “왕인 박사는 이 과정에서 영산강 유역(영암 구림 상대포구)에서 마한 사람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다양한 신 문물을 전해줬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박광순 명예교수는 “역사학계에서는 왕인이 일본에 전해준 천자문이 6세기 때 양나라의 주흥사라는 인물이 편찬한 것으로 5세기에 왕인이 이를 일본에 전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으나, 분명 3세기에도 천자문은 존재했다”며 기존 학설을 반박했다.

그는 “중국에는 주흥사 천자문 외에도 여러 천자문이 있었으며, 대표적으로 3세기 위나라 때 종요가 편찬한 천자문이 있기 때문에 왕인이 다른 천자문을 가져갔을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임영진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가 왕인에 대해 부정적인 기존 학설을 배척하는 한편 새로운 연구를 위한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일본에서 학문의 신으로까지 추앙 받는 왕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돼 한. 일 문화교류의 실상을 파악하는 새로운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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