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여, 노래를 멈춰다오
입력시간 : 2009. 04.17. 00:00확대축소


그 나물에 그 밥이라 했던가? 모방은 곧 창작이라 했던가? 어쨌든 요즈음에 발표된 문학작품을 대하노라면, ‘누구 누구의 냄새가 난다’, 혹은 ‘이거 누구의 제자로구만’ 할 정도로 친자(親炙) 또는 지도받거나 혹은 사숙(私淑)한 사부(師父)를 흉내 낸 작품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콩나물·시금치·무나물·토란대·보리밥 등에 고추장을 한데 넣고 섞어 비빕밥을 만들 때 그 비비는 자가 다르다고 해서 뭐 확 달라지는 어떤 맛이 나오겠는가? 그 나물, 그 밥, 그 고추장인데 비비는 자에 따라서 별다른 맛이 나올지, 모르긴 해도 신통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시 창작에 있어서는 그렇지도 않는 것 같고, 힘 있는 자의 판박이인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어른들, 특히 힘께나 쓰고 행세께나 한다는 사람들의 아집과 이기심이 그렇게 만들었거나 부추기는 듯하니 문제라면 그들이 훨씬 더 문제라 여겨진다.

정치판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술계조차도 문단을 포함하여 어느 한곳 ‘내 사람 심기’ 또는 ‘책 팔아 먹기’에서 자유로운 데가 많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이른바 ‘줄타기’와 ‘끼워 팔기“는 벼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루 아니 조석이 멀다하고 변화를 거듭하는 초고속시대라고들, 입만 열면 뇌까리면서도 정작 ‘줄내리기’, ‘기웃거리기’는 여전하고 문학이나 예술을 빙자한 장사치가 성행하다 보니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닐 수가 없다. 창조와 발전을 위한 모방이 아니라, 얼굴 내기 위한 답습이나 흉내 내기 아니 매매행위를 예사로 저지르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이판에, 진정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버려야할 것인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 일지라도 각각의 얼굴과 성격이 다를진대, 항차 살았던 시대와 처했던 상황이 다름에야…. 조선시대 소인(騷人:시인묵객)들, 그들은 초기에는 중국의 시문을 전범(典範)으로 여겨 그 것의 모방을 자랑 또는 의무인 냥 했다가, 중·후기를 지나면서부터는 ‘조선’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 가운데 주체의 인식을 뚜렷이 간직한 시작(詩作)을 했다.

그야말로 진정한 개체성과 정체성(正體性)에 기반한 물각부물(物各付物)의 창작 자세라 높이 생각되거니와 오늘날처럼 몰주체·몰개성적인 소위 ‘비빕밥’문화, 또는 ‘잡탕’문화를 맹종하거나 부추기는 패거리들에게, 아니 사부(師父)의 그늘에 안주하면서 앵무새가 되기를 간절히 갈구하는 자들에게 울리는 경종(警鐘)이 아닐 수 없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쓴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영처고」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천박하도다. 무관(懋官: 이덕무의 자)의 시 지음이여, 고인을 배웠으되 그럴사한 것을 보지 못하여 털끝만큼도 같은 종류가 되지 못하니(내용이 고인의 시와 다르다는 말-인용자) 어찌 옛 시인의 소리(옛 사람이 지은 시 형식-인용자)와 유사하겠는가.

야인(野人)의 비루함에 안주하여 시속(時俗)의 자잘한 것에 기뻐하니 이는 지금의 시이지 옛날의 시는 아니다.”고 하였다. 연암이 이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말하기를 “이 시는 가히 볼만한 것이다.

옛 것으로 말미암아 지금 것을 본다면, 지금 것이 사실 비천하긴 하지만, 옛사람이 자기 스스로의 것을 보았을지라도 반드시 옛 것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 당시에 본 사람도 또한 한갓 지금 것일 뿐이라.”고 했다.(중략) “수박의 겉을 핥고 후추를 통째로 삼킨 자와는 더불어서 이야기할 수 없고, 이웃 사람의 담비 가죽옷을 부러워하여 여름날 빌려 입은 자와는 때(시절)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할 수가 없다.

의관을 거짓 꾸미는 것은 어린 아이의 진솔함을 속이기에도 충분하지가 않다.(중략)“ 이는 무조건 고인의 시를 모방하느라고 자기의 고유한 목소리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른바 ‘앵무새’시인과 맹목적인 옛 시인 추종론자들에 대하여 ‘수박의 겉핥기’, ‘통째로 후추 씹기’ 등의 비유를 구사하여 질타한 것으로 우리에게 던지는 파장이 크길 바란다. 이덕무 그는 진정한 조선 시인 이었으니까….

최한선<전남도립대 교수·시인>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는 파인뉴스(http://www.xn--vg1b002a5sdzq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파인뉴스.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