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공민(公民) 또는 국민(國民) 보다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시민적 자유’를 누리는 계급으로 인식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처럼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인격을 소유하는 시민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를 우리는 ‘시민사회’(Civil Society)라고 부르며, 이들 시민사회가 특정 지역을 공동으로 하고 있는 주민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기초로 하여 조직을 구성하여 운용할 때 그것은 ‘시민단체’가 된다. 특히 자본주의가 고도화되고,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면서 개별적 존재로서의 시민의 역할이 제약되고 축소됨에 따라 시민들은 시민단체의 역할에 기대하는 경향이 높아지게 되었다. 실제로 적지 않는 개발도상국가에서 국가권력이 독재화의 길을 걷게 될 때 그것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시민단체의 역할은 어떤 의미에서는 야당을 능가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체육관 선거’를 불식시키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1987년의 민주화 과정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단결된 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역할은 우리사회에 내재된 모순을 개혁함으로써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졌고, 그 과정에서 ‘경실련’이나 ‘환경단체연합’등이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지난 12일 광주의 어느 호텔에서는 지금 지역사회의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조선대학교의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모임이 개최되었다고 한다. 몇몇 시민단체의 대표 이름이 등장한 이 모임의 목적은 까놓고 이야기하면 ‘조선대학교를 구 경영진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에 있으며, 시민단체와 종교인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주동세력은 구 경영진 측 인사들이라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조선대학교의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직결되어 있고, 그 소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 조선대학교에서의 민주화운동이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5공치하에서 사회가 그것을 뒷받침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며, 1988년에 그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숙된 시민사회의 역량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 6?29선언 이후 광주의 시민사회가 조선대학교의 민주화를 성원했던 까닭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이 지역 교육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조선대학교에서 더 이상의 ‘비교육적 작태’(각종 비리, 교권과 학습권 유린 등)가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조선대학교문제에 지역사회가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다. 하물며 시민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비록 지엽적인 잘못이 있다고 할지라도, 20년간 민주적 발전을 거듭해온 조선대학교를 각종 비리와 비교육적 행태로 얼룩진 前 경연진에게 돌려주자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시민운동의 추진체로서의 시민단체의 생명은 순수성과 민중성(民衆性) 그리고 내부적 의사결정과정에서의 민주성(民主性)에 있다. 만약 그 모임에 참여한 분들의 행동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스스로 내세우는 지난날의 반독재 투쟁을 욕되게 할 것이며 ‘판단력의 쇠잔’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민단체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시민들에 의해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 처신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최성욱 기자 yen4800@hanmail.net 최성욱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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