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석>가을, 死滅인가? 기쁨인가
입력시간 : 2009. 09.30. 00:00확대축소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 가을은 오곡백과가 익어가는 풍요의 계절이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농부들은 가을바람에 땀을 식히고,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한다.

가을 들녘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데 유럽은 우리와는 다른 모습이다. 어느 한 가을날 오후 하얀 고양이를 안고 죽어갔던 연인(戀人)을 몽상하는 말라메의 詩를 읊는다. 정서에 농도짙게 젖기 위해 창밖에서 풍금을 키며 한푼 적선하라는 거지에게 돈을 던져주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 시는 끝나고 있다.

함에도 유럽에서는 이 시가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시로 자주 거론되는 시다. 가을을 소재로 한 유럽의 명시들을 보면 3편 가운데 2편 꼴이 이 같은 우울한 사멸(死滅)이미지다. 고위도 지방인 유럽에 있어 생존을 위협하는 그 지루하고 혹독한 겨울의 전주곡인 가을이 반가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을은 인생에다 비유하면 중노인(中老人)이요. 하루로 치면 석양이며, 그리스도교에서는 최후의 만찬으로 비유한다. 방향으로 치면 가을은 해 저무는 서쪽이요, 빛깔로 치면 하얀 빛, 맛으로 치면 떫은맛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우울한 이미지의 가을을 계절 속에 끼워주기엔 인색했으며 가급적 소외시키려 애썼다. 완연한 가을인 10월 중순경을 '리틀 섬머'라 불렀고, 11월 초순을 '올 해로운 섬머'로, 겨울이 시작되는 11월 중순경을 '성(聖)마틴의 섬머'로 불러 가을을 여름호칭권에 잡아둠으로써 계절에서 따돌리려 했던 것이다.

미국에서까지도 가을을 '인디언 섬머'로 불렀던 것도 이 가을을 싫어하는 전통의 여파로 볼 수가 있다. 영국에서는 14세기까지만 해도 한 해를 여름과 겨울 두 계절로 양분했을 뿐이다. 가을이 처음 등장, 3계절이 된 것은 15세기경으로 문인(文人)초서가 '오텀'이란 말을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라 한다.

그 이전까지는 가을이라는 계절 이름이 없고 다만 수확을 하는 철이란 뜻인 '하베스트', 낙엽지는 철이란 뜻인 '폴'로 불렀을 뿐이다. 가을은 우리 한국이 위치한 풍토대에 자리잡은 소수의 나라 사람에게만 주어진 신의 혜택인 것이다.

그래서 고금 할 것 없이 우리 한국인은 사철 가운데 가장 가을을 선호한 데 예외가 없다. 가을이면 풍년가를 부르고, 가을의 명과 중 포도를 주제로 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고려 말엽에는 가을 속에 포도를 주제로 한 시도 자주 나온다.

목은 이색은 "포도송이 시렁에 가득하니 마치 푸른빛이 흘러내린 것 같네."하고 읊고 있다.

도운 이 승인도 "포도 한 알 입 속에 터뜨리니 지병이 나은 듯 하네. 굴이 봉래산까지 약초 캐러 갈손가." 했다.

가을을 기다리지...옛 편지 첫머리에 "포도 순절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바로 백로에서 추석까지의 시절을 포도 순절이라 했다.

지금이 바로 그 포도의 계절이요, 들녘을 보기만 해도 오곡백과로 배가 불러 온다는 계절인 가을이다. 이렇다보니 노산이 "전쟁으로 할퀴고 발기고 해도 가을만은 제때에 두어두십시오." 하고 시를 읊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 풍요로운 가을이 자꾸 짧아져가는 것만 같다. 옛날의 가을은 입추(8월 초순)부터 입동전날까지(11월 초순) 석 달 동안이었는데, 기후변동이 해마다 심해 요즈음은 백로부터를 가을로 잡는 것이 상식이 돼 있으니 가을이라는 황금을 한 달이나 손해보고 있는 셈이다.

이러다간 농부들이 들녘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온다는 가을이 기후변화로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고운석 <시인. 남구발전협의회 회장>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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