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선>대학과 ‘리콜’
입력시간 : 2010. 03.26. 00:00확대축소


대학이 생겨난 이후로 대학에 대한 정의나 역할론은 수도 없이 제기되어 왔다. 조선시대 오늘날 국립대학격인 성균관과 사립대학격인 서원은 대체로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의 삼 강령(綱領)에 충실한 교육을 실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삼 강령이란 다름 아닌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또는 친민(親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인데 <대학>이란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명덕(明德)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 곧 형체는 없지만 기능은 맑고 환하여 거울이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이 모든 이치를 다 갖추고 있어서 무슨 일이나 응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명덕은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사물과 접하게 되면 그 본래의 기능과 순수성을 잃고 속세의 욕심에 가려져 때로 어둡게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타고난 명덕의 기능이 없어지거나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이 노력을 해서 기 본래의 기능을 찾아 활성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 ‘명덕을 밝힌다(明)’ 였으니, 이른바 사람의 심성과 관련한 공부를 뜻하며 이는 요즈음 말하는 대학의 연구 기능과 크게 다르지 않는 말일 것이다.

이어 신민 또는 친민이라 함은 무엇인가? 신(新)이란 옛 것을 고친다는 말이니 백성들 사이에 부모로부터 타고난 ‘명덕’을 잃어버린 자가 있으면 그 것을 고쳐주는 역할을 열심히 하라는 말로 이 또한 오늘날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가르침과 사회봉사의 기능 아니겠는가? 친민 곧 백성과 친하게 지내라는 말도 역시 혼자만 명덕을 밝힌 처지에 있지 말고 여러 백성들과 친하게 어울려 지내면서 그들도 명덕을 밝힐 수 있게 도와주라는 뜻이니 의미는 신민과 크게 다름이 없다.

마지막으로 지선에 멈춘다는 ‘지어지선’은 무슨 말인가? 지선(至善) 곧 지극한 선이란, 사리의 당연한 표준(極)이다. 어떤 일이든 표준이 있는 것이니 그 표준을 찾았으면 거기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부탁이다. 다시 말하면 심성(명덕)을 공부함에 있어서나 백성을 가르치고 사회에 봉사함에 있어서, 그 표준의 경지를 잘 지키라는 말로써 이전 대학의 임무를 설명할 수 있겠다.

이렇게 앞서 본 바와 같이 이전의 우리 대학은 대학이 주체적, 능동적 자세에서 사회와 백성을 위해 연구하고 가르치며 봉사하는 일을 하였다. 이는 달리 이전의 대학은 연구와 가르침 그리고 봉사의 공급자였고 그 공급은 늘 일방향 적이었다. 달리 공급자 천국이었다. 이는 수요자의 처지에서 공급자를 어찌할 수 없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운다는데 지금은 어떤가? 대학은 우선 수요자의 오감을 만족해야 한다. 오감이라 했거니와 이는 수요자가 원하는 ‘쭉쭉빵빵’한 외모와 전공 관련 자격증 두세 개, 글로벌 시대 운운하면서 요구하는 둘 이상의 외국어 능력이나 자격증, 그리고 컴퓨터 활용 관련 자격증 외에 운전 면허증 등을 가리킨다.

이뿐이 아니다. 외국 연수 점수, 봉사 활동 시간, 한자 능력 등 이른바 만능의 상품 아닌 ‘고급 상품’을 원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학 교수는 학생에게 자격증을 따야 된다는 둥, 외국어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둥 수요자가 요구하는 ‘고급 상품’이 되라고 부탁 아닌 잔소리를 하기가 다반사다.

학문이 어쩌고 역사가 어쩌며 교양이 어떠하다는 말을 내세울 처지가 미약하다. 대학들은 여기에 한 수 더 뜬다. 취업률 몇 위라는 달콤한 말을 내세워 신입생 유치에 혈안이 되어 있다. 취업률이라는 것도 실상을 따져놓고 보면 몇 달짜리 비정규직이 부지기수로 많음은 다 아는 비극적 현실이지만. 어쨌든 대학은 수요자의 입맛에 따라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고 있으니 이래도 되는지 걱정이다.

대학이 이처럼 파행으로 가다보니 학교를 그만둔 예슬이란 여대생의 절규가 터져나오는 등 자성의 목소리가 들끓고 있지만, 그렇다고 수요자를 외면한 교육을 해도 되는지. 취업하기 위해 대학을 가는 세상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자기네 대학에 오면 취업은 걱정 없다고, 이른바 ‘고급상품’으로 만들어준다고 떠들어온 대학들, 취업을 시키지 못했다면, 불량상품을 생산했음에 틀림없으니 이젠 ‘리콜’해야 당연하지 않을까요? 우리 대학이 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년 실업 4백만, 무량한 리콜 사태가 오기 전에….

최한선<전남도립대학 교수·전남문화재연구원장>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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