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군 춘양면(春陽面) 우봉리(牛峯里) 우봉마을은 뒤로 금오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 지석강이 지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시골마을이다. 우봉마을 앞 넓은 벌판은 화순의 대표적인 평야지대. 그래서 들소리가 살아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돈도 밥도 안 나오는’민속놀이 맹연습중인 어르신들. 지난 정월대보름 화순군 민속놀이를 조사하면서 우봉마을을 알았다. 농촌인구 고령화로 요즘 시골에서 농악소리 듣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정월대보름 때 행해지는 당산제 등 민속놀이는 간간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것도 약식으로 지낼 뿐이다. 농악 없는 조용한 당산제만 지내는 마을이 대부분인데 우봉마을은 달랐다. 아직도 농악소리 쨍쨍하다. 연세는 드셨지만 상쇠 홍목희(73) 할아버지는 여전히 꽹과리가 부서지도록 신명나게 치고, 북소리 장구소리 빵빵하다. 우도 가락 같으면서도 다른 마을과는 다른 독특한 가락이 그대로 살아 있는 민속의 보고 같은 마을이다. 특히 들소리를 할 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요즘에 우봉마을에는 들소리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분이 아직도 계신다. 홍승동(86) 할아버지는 열 여덟 살 때쯤인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가다가 부잣집 사랑채에서 흘러나오는 축음기 소리를 처음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당시 유행했던 임방울 소리가 아니었나 싶단다. 그 소리가 어찌나 좋던지 담벼락에 기대어 축음기 돌아가는 소리만 듣다가 나무하는 것도 잊고 말았다. 배가 고파 빈 지게 지고 집에 돌아와 몰래 밥 먹다 어머니에게 혼났다는 할아버지. 처음 들었던 그 노래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계셨다. 전라남도 주최 남도문화제에 화순군 대표로 나가는 마을 사람들과 지난 여름 동안 함께 ‘우봉리 들소리’연습을 해왔다. 그 새 정이 많이 들어버렸다. 연습이 끝나고 갈 때면 조용히 나를 불러 당신들 집으로 데리고 가서는 감자며 고구마며 땅콩 등을 싸주시기도 했다. 새 김치를 담갔다며 한 통 건네시기도 하고, 햇밤이라며 한 봉지 싸 주시기도 하고. 평생 고된 농사일로 아픈 허리를 제대로 굽히지도 못하고 관절병으로 걷기도 힘든 할머니들에게 팔을 더 올려서 흔들어 보시라, 허리를 더 숙이시라, 무릎을 굽히시라는 둥 ‘말도 안 되는’주문을 하면서 연습을 했다. 그래도 주민들은 열심히 해 주셨다. 농사일만도 바쁠 터인데 시커멓게 탄 얼굴로 ‘돈도 안 나오고 밥도 안 나오는’민속놀이 연습을 하고 있으니 마을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촌 노인네들이 대회 가서 우세나 안 살랑가 몰겄어” 지금껏 민속놀이 연습한답시고 와서는 연습만 끝나면 바로 돌아가는 바람에 제대로 마을 구경을 못했는데 오늘은 일요일. 편하게 마을 구경을 해 볼 요량이다. 평소 같으면 마을 앞 정자에 사람들이 많을 텐데 텅 비어 있다. 오늘 마을 결혼식이 광주에서 있어 주민들이 모두 식장에 갔다 한다. 마을 뒷산인 금오산에서 흘러내리는 토랑이 마을 가운데로 지나는데 다리가 10개나 된다. 텅빈 마을 토랑길을 따라 가는데 홍옥희(69) 할아버지가 나오시더니 나를 보곤 깜짝 놀라신다. 일요일 날 웬 일이냐고. 마을 구경왔다 하니 길잡이를 자청하신다. 조금 가니 안동댁(71) 할머니가 나온다. 덥석 손을 잡더니 집으로 가잔다. 사위가 줬다는 멋진 커피잔에 커피와 포도를 내오신다. “촌 노인네들이 제대로 연습이 안 되어서 대회 가서 우세나 안 살랑가 몰겄어”하시며 미안해한다. 13년 차이나는 서방 만나 살다가 10년 전에 홀로 되었다는 안동댁의 소원은 의외다. 저 세상 가서 공부 많이 해서 좋은 세상 살고 잡단다. 날마다 기도한단다. 홍승동 선소리꾼 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이젠 안동댁도 함께 길잡이로 나섰다. 아담한 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마루에 계신다. 매주 연습할 때마다 할아버지 집이 궁금했는데 집이 초등학생 같은 할아버지를 닮았다. ‘정성굴 할머니’(83)로 통하는 능성 구씨 할머니는 젊었을 적부터 일하고 사느라 할아버지가 노래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단다. 할머니 19살 때 22살인 할아버지 만나 지금껏 4남3녀 키우고 살면서도 그랬단다. 그래도 할머니는 “이 양반은 초성이(목소리) 좋아서 듣기가 좋아” 하신다. 처음 부잣집 사랑채에서 흘러나오던 그 임방울 소리를 한번 불러 달래니 할아버지는 기분이 좋다며 즉석에서 부르신다. “오동추야 어어어 달이나 밝은디/ 이놈은 생각이 저절로 나누나/ 과부 삼년에 열녀비를 못 모시고/ 술장시 삼년에 님 소원 풀었네/ 쓸쓸하고 외로운 이 세상/ 누구를 바래고 내가 살어야…” 초등학생 같은 저 작은 체구에 이도 다 빠진 홀쭉한 입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어찌나 구구절절한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그 소리는 터졌다 하면 거미똥끝에서 거미줄 나오듯이 한정없이 나온다. 공연 시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시나리오대로 끊고 시작하셔야 하는데 한도 끝도 없이 선소리를 메기는 바람에 공연시간 30분을 초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도 좋다. 이름표 붙은 농기구 나란한 헛간. 사진 찍어 드린다 하니 할아버지는 할머니 머리를 가지런히 넘겨주신다. 지긋이 눈감는 할머니의 표정이 편안하다. 마을 당산에서 연습하다 점심 먹을 때면 할아버지는 항상 밥과 국을 가지고 집에 가셨다. 할머니가 누워 계시기 때문에 점심 챙겨줘야 한다면서. 그래서 난 오늘도 할머니가 머리 싸고 방에 누워계실 줄 알았다. “인자 쫌 사람 되앗어.” 할아버지 손길이 참 따듯하다. 축음기가 돌았다는 부잣집 사랑채를 보고 싶었다. 쇠락해 있지만 낡은 편액이 건물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홍승동 할아버지도 몇 십 년 만에 들어와 본다며 잠깐 회한에 잠긴다. 상쇠인 홍목희 할아버지 집에 가니 저녁부터 먹자 하신다. 혼자 사시면서 직접 해 드시는 분이라 거절 않고 부쇠 할아버지랑 겸상을 한다. 민속놀이 공연 소품에 일일이 매직펜으로 이름을 쓰는 꼼꼼한 성격의 할아버지 집은 걸려 있는 물건마다 확실하게 이름표가 붙어 있다. 헛간에 걸려있는 이름을 가진 그 수많은 농기구들. 할아버지의 평소 성격이 그대로인 집이다. 할아버지 고등학교 학생증과 상처하신 할머니의 젊었을 적 도민증을 지금껏 온전하게 보존하는 모습에 할아버지 안 계시면 민속놀이 소품이 거덜 날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을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에 해 저무는 줄도 몰랐다. 글=심홍섭 <화순군 문화재전문위원>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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