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나라 중국 295회
◆중국의 여행 편 강태공(姜太公)과 임치(臨淄)
입력시간 : 2014. 02.17. 00:00확대축소


◆중국의 여행 편 강태공(姜太公)과 임치(臨淄)

임치는 치박시에 속하는 구(區)이다. 이전에는 임치현이었지만, 지금은 임치구로 승격이 된 곳이다. 강태공이 제나라를 세울 때 치수(淄水)에 임(臨)해서란 뜻의 임치이다.

매년 강태공(姜太公) 사당에서 문화축제를 열고 있다. 2013년 9월 12일은 강태공 탄생 5,152주년 축제를 열었다. 중국에 있는 강태공 후손은 물론 한국, 대만, 동남아 등 각국에서 600여명이 참석한다.

강태공의 사당에는 중앙에 강태공, 왼쪽에 큰 아들 정공(丁公), 오른쪽에 제나라시대 가장 뛰어난 환공(桓公)이 나란히 있다. 강태공의 셋째 아들인 목공(穆公)이 구(丘)씨로 바꾸었기 때문에, 사당 내에 목공의 사당도 있다.

우리나라 평해구씨(平海丘(邱)氏)들도 목공 사당에 비석이 만들어 있다. 중국 후한의 유신(儒臣) 황락(黃洛)은 신라 유리왕 5년 AD 28년에 구대림장군과 함께 교지국(交趾國: 월남)에 사신으로 갔다 오던 길에 풍랑을 만나 평해에 표류하여 도착한 곳에 자리 잡고 살았다.

노씨는 원래 강태공의 8세손인 혜(傒)가 있었는데, 혜는 제(齊)나라의 정경(正卿)벼슬에 올랐던 사람으로 노현(盧縣)이라는 고을을 식읍(食邑)으로 받아서, 후에 이 고장의 이름을 따 성을 노(盧)씨로 정하였다. 노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원래 당나라의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라고 전하는데, 그는 당나라 말년에 중국 범양(范陽)에서 왔다.

하북성 탁주시에 범양노씨 대종사가 있다. 탁주를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탁주는 이름이 천하에 날리고(涿州名揚天下), 탁주는 세계 노씨 시조의 땅이다(涿州是世界盧氏祖先的基地)’라고 적혀 있다.

시조 노수가 아들 9형제를 거느리고 신라에 왔으며, 9형제가 모두 신라에 등과 하여 고려 초년에 봉읍(封邑)됨으로써 9관 노씨의 시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광산노씨가 큰집으로 알려졌으며, 교하노씨, 풍천노씨, 곡산노씨 등이 다 같은 집안이다.

1992년 8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산동성 부성장에게 “우리의 시조가 산동에 살았으며, 강태공의 후손이므로 나도 산동인 아니냐?” 라고 말하자 부성장이 간절히 방문하기를 부탁하여 2000년 6월 18일 강태공사당을 참배하고 ‘선조의 뜻을 계승하자’라는 글을 남겼다.

남양방씨는 방현령(房玄齡: 579-648)에 시초를 둔다. 방현령은 당나라 태종(太宗) 때 위대한 정치가로 임치(臨淄) 출신이다. 그가 634년(당태종 정관8, 고구려 영류왕17) 고구려의 주청(奏請)으로 동래(東來)하여 남양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방현령은 수나라 말기 이세민(李世民)이 위수(渭水) 북쪽을 점령했을 때부터 그에게 투신하여 그의 건국사업을 도왔다. 이세민이 당을 세운 후 문치(文治)체제 확립을 위해 불러 모은 진왕부(秦王府) 18학사는 후에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끌어간 핵심인물이 되었는데, 18학사 가운데 첫 번째로 지명된 사람이 방현령이다.

◆著者 姜元求 박사의 프로필 現 행정학박사/ 現국제관광교류협회장/現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現광주여행문화원 회장/現 중국 심양. 남창 명예시민/ 前 전국시도관광협회연합회장/前 광주광역시관광협회장/ 前 광주권발전연구소장/ 前광주상아탑학원 원장 前호남대학교 초빙교수 책 구입 및 연락처 :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062)652-8800 http://www.hanjoong.pe.kr/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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