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순신 장군 뿐만 아니라 함께 전투에 참여한 호남 지역의 해상 의병들도 승리의 주역인 만큼 이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597년 10월 ,진도 울돌목 이순신 장군은 이곳 명량 해협에서 13척의 배로 왜선 330여척을 격파해 세계 해전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런데 이 걸출한 영웅과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수군들은 과연 누구일까? 관군도 있었지만 순천 광양과 고흥, 보성 그리고 장흥과 강진, 화순 출신 등 지역민들이 주축이 된 해상 의병들이 많았다. 의병은 관군이 대응하지 못한 부분을 메꿔주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적에게 대항해서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충의정신을 불러일으키게 만들다. 이 때문에''임진왜란과 호남''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이민웅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은 명량 해전의 승리 요인 4가지 가운데 하나로 ''연안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원과 참전''을 꼽았다. 또한 정유재란 막바지 동아시아 3개국이 참여한 순천 왜교성 전투 역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후의 격전지이면서 한중일 3국 육해상군이 연합 전선을 벌인 격전지가 오늘날 순천의 왜성이다. 난세의 영웅 이순신을 기리면서 그와 함께한 수많은 지역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도 같이 기리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따라서 보성군 득량면 군머리에서 전사한 최대성(경주 최씨) 모의 장군의 업적도 대단한 영웅적인 전투를 해서 전사했던 것이다. 또다른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 출신인 최경회 장군(해주 최씨)에 대한 많은 학술자료도 확보해서 최 장군에 대한 영웅적인 역사적 의미를 확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경회 장군과 논개의 호국정신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최재승<파인뉴스 대표이사.화순기자협회 고문>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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