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망각(忘却)의 기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월호의 참담함도 일반국민들의 뇌리 속에서는 서서히 잊혀져가면서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갑오년에는 우리 지역에서도 적지 않는 갈등들이 있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임시장의 독존적 행정스타일과 크고 작은 비리들이 지역민들을 우울하게 하였다. 선거 때에는 그토록 최고의 목민관이 되겠다고 외쳐대던 사람들이 당선된 후에는 목에 힘줄이 튀어 나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고 맑게 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예술분야에서도 갈등들이 없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빛고을문학관’ 건립을 두고 문학인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은 상호 비방만으로 끝나지 않고 끝내는 고소사태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어디 그뿐인가. 신임시장의 ‘중국과 친하기’(China Friendly)의 핵심인 정율성 생가 문제 또한 동구와 남구, 하동정씨종친회와 직계유족 간에 다툼이 끝나지 않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며칠 전 중앙 일간지에 미국의 최남쪽 섬 키웨스트(Keywest)를 소개하는 기사가 실린 것을 읽었다. 마이애미에서도 자동차로 4시간 이상을 달려야 하는 외딴섬 키웨스트를 수많은 관광객이 줄을 잇는 것은 단연 ‘헤밍웨이’ 때문이다. 특히 헤밍웨이가 10여년을 살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킬리만자로의 눈’과 같은 명작을 썼던 ‘헤밍웨이의 집’은 13달러의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면 누구나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헤밍웨이의 집을 그린 조그만 한 그림은 필자가 그곳을 찾았던 10여년 전, 38달러에도 얼마동안을 기다려서야 살 수 있었다. 소설가 한 사람의 힘이 외딴 섬을 이처럼 관광명소로 만들고, 밀려드는 관광객의 위력이 202km에 달하는 ‘바다 위의 고속도로’(Over sea′s Highway)를 건설하게 하였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광주를 문화수도,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만들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 허브 역할을 맡을 건물도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그 문화와 예술의 토대이자 뿌리인 문학관 하나 없는 현실을 우리는 무엇으로 변명할 것인가. 더구나 광주에서 문화적 토양이, 자양분이 풍부하다. 예를 들어 광산구 소촌동에 생가가 있는 용아 박용철은 그 유명한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영랑 김윤식, ‘향수’의 시인 정지용과 함께 1930년대 시단을 풍미했던 인물이다. ‘나두야 간다’로 시작되는 ‘떠나가는 배’가 대표작으로 꼽히는 그는 순수시의 지평을 한 단계 넓힌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양림동 언덕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김현승도 광주를 대표하는 시인중 한명이다. 몇 해 전 타계한 ‘전라도’의 이성부, 그리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평역에서’의 곽재구의 터전도 이곳이다. 이처럼 광주가 배출한 숱한 시인과 소설가들의 작품마저도 한곳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문화수도’를 이야기 하는 것은 지나친 허장성세가 아닐까 싶다. 을미년 올해에는 모든 문학인들이 각자의 성향과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광주를 대표할 수 있는 문학관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합심함으로써 ‘문학의 꽃’이 활짝 피기를 기대한다. /오수렬<정치학 교수>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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