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이성계가 천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럴까? 이성계(1335~1408)가 이자춘의 아들로 두만강변 화령부(영흥)에서 태어났지만, 고려 개경에 처음 발길을 들여놓은 것은 만 스물한 살 때인 공민왕 5년(1356년) 3월 이었다. 격구(擊毬)대회에 나갔는데, ‘태조실록’은 이때 “온 나라 사람들이 몹시 놀라면서 전고(前古)에 듣지 못한 일”이라고 했다고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선보였다. 그로부터 36년 후인 1392년 이성계는 475년 동안 유지되던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창한다. 이성계는 어떻게 조선을 개창할 수 있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이 그의 집안이 대대로 갖고 있던 무력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집안은 징기스칸의 막내 동생 웃치긴 왕가에 소속되어 지금의 연변일대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군사력을 갖고 한 체제를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새로운 체제를 세우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개국은 말 위에서 하지만 국가 운영은 도서관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성계는 또한 원명(元明)교체라는 동북아 정세의 큰 변화의 틀 내에서 어느 발향으로 가야 하는가를 간파하는 외교적 능력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보다도 중요한 것은 고려 내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큰 고목이 쓰러지는 것은 비바람 때문이 아니라 안의 벌레 때문이란 이야기가 있듯이 한 국가나 한 사회의 붕괴는 대부분 외부보다는 내부요인 때문에 발생한다. 당시 고려의 가장 큰 문제는 극심한 양극화였다. 약 60~70가문 정도로 추정되는 ‘구가세족’들이 고려 전체의 부를 독점하고 있었다. 구가 세족들은 고려 전통 귀족 세력과 원나라에 붙어 성장한 부원배(附元輩)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려사’에는 이들 집안이 가진 토지의 크기에 대해 “그 규모가 한 주(州)보다 크며, 군(郡) 전체를 포함해서 산천(山川)으로 경계를 삼는다”라고 기록돼 있다. 한 집안이 한 주(州)보다 크며, 군(郡) 전체를 포함해서 산천(山川)으로 경계를 삼는 토지를 독점하기도 했으니 대다수 농민들은 몰락해서 이들 집의 노비를 들어가거나 고향을 떠나 유리걸식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새 나라를 개창하는 방법이라고 제시한 인물이 삼봉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전하(이성계)께서는 잠저(潛邸:즉위하기 전의 집)에 계실 때 친히 그 폐단을 보시고 개연히 사전(私田)혁파를 자신의 소임으로 여기셨다”고 말했다. 소수가 나라 전체의 부를 독점하고 다수가 절망하는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하는 길이 바로 사전혁파였다. 사전을 혁파해 다수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왕씨 국가를 무너뜨리고 이씨 국가를 만들 수 있는 길이라는 역성혁명의 논리를 제시한 것이었다. 이 글에서 정도전은 이성계가 하려던 사전 혁파가, “경내의 모든 토지를 남김없이 몰수해서 공가(公家:국가)에 속하게 하고, 백성의 수를 헤아려서 농토를 나누어 주려했다”는 것이라며 이것이 ‘옛날의 올바른 토지제도’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역성혁명파는 위화도 회군후 고려의 모든 토지문서를 불살라 버리고 1391년 과전법(科田法)을 반포했다. 과전법은 비록 이성계와 정도전이 계획했던 대로 모든 백성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는 단계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도전이 “前朝:고려)에 비하면 어찌 만 배나 낫지 않겠는가”라고 자평할 정도로 혁명적인 토지개혁이었다. 그 결과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역시 고려 말과 크게 다름이 없을 정도로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땅과 저 땅은 재벌이 가지고 있는 땅. 또 이곳과 저곳은 이명박 전 대통령 소유라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또한 온 사회 구석구석 썩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극에 달해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말도 심상치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6·13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조용히 흘러가지는 않을 것 같다. 고려 말의 극심한 양극화를 해소했던 이성계에게 천명이 내려졌던 것처럼 극심한 양극화와 부정부패를 일소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천명이 내리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그리 보고 있다. /고 운 석 <시인>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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