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가장 오래된 직업, 성매매 | |
| 입력시간 : 2023. 10.06. 11: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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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성매매를 합법화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다만, 성매매행위 전반에 대하여 무차별적으로 단속하기보다는 문제가 심각한 인신매매, 청소년 성매매 등에 단속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성매매의 역사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여 사유재산과 계급 분화가 나타날 때부터 성매매(매춘)가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지만, 일회적인 성매매는 인류가 탄생한 순간부터, 아니 호모 사피엔스가 독립된 종으로 분화하기 이전부터 있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래서 매춘부는 사냥꾼과 함께 인류 최초의 직업이라고 불린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 이야기에서도 신전에서 매춘을 하는 여사제가 나오고, 수메르의 우르크에서는 여사제들이 매춘업소를 운영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처럼 고대에는 성(聖)과 성(性)이 구별되지 않았으며, 성(性)과 생식능력은 자연 또는 신이 준 선물로서 주술적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몸을 파는 유녀(遊女) ‘헤타이라(Hetaira)’ 외에 하급창녀 ‘포르노이'(Pornoi)’가 있었는데, 포르노이와 그들의 손님에 관한 기록물이 바로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였으며, 여기서 성관계 영상과 이미지를 뜻하는 포르노(porno)가 파생했다.
로마 제국에서도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매춘을 한 건 노예나 사회 하층민이었는데, 고대 로마의 도시 유적이 그대로 남은 폼페이에서도 이런 유곽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가 매춘을 용납하지는 않았지만,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는 군중을 향해 “여기 죄 없는 자 있거든 먼저 돌로 치라”고 하여 사람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자리를 떠났다는 요한복음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강간과 같은 더 큰 죄악을 저지르는 걸 막기 위한 ‘필요악’이란 논리로 매춘이 묵인되었으며, 기독교의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매춘을 금지하면 성욕을 해결할 수단이 없어져서 욕구 불만에 찬 사람들이 날뛰어 사회 질서를 혼란스럽게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근대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인류 역사상 매춘은 늘 있었다. 매춘은 계급사회나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소련에서도 암암리에 성매매가 있었다.
◆기녀 황진이와 매창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기생 또는 기녀가 존재하였는데, 기녀는 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춤 및 풍류로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는 일을 하던 여성을 말한다.
이 중에는 사대부들과 연애를 하면서 시나 시조로 뛰어난 문학작품을 남기기도 한 고급 기생이 있는가 하면, 암암리에 매춘을 하는 하층 기생(‘은근짜’)이 있었으며, 대놓고 몸을 파는 유녀도 있었다. 물론 고급 기생이라고 하여도 왕족, 양반들의 동침 요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녀로, 조선 중기 개성 출신의 황진이가 있다. 그녀에 대해서는 이덕형의 ≪송도기이(松都奇異)≫나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 등에 이야기가 전해온다.
청산리(靑山裏) 벽계수야 쉬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할 제 쉬어감이 어떠리.
황진이는 격조 있는 이 시로 왕족인 벽계수(碧溪守)를 무너뜨렸다. 여기서 벽계수와 명월은 계곡물과 달이지만, 각각 벽계수라는 인물과 황진이를 뜻하기도 한다. 이어 황진이는 살아 있는 부처로 통하던 지족선사를 파계시켰고, 시문에 뛰어나고 도도한 양반 소세양도 꺾었다.
황진이는 도학군자로 이름을 날리던 화담 서경덕을 유혹하였는데, 그의 높은 덕망에 감복하여 제자가 되었으며, 화담을 자신과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칭송했다. 다음 시조를 보면 서경덕도 마음속으로는 황진이를 좋아했던 것 같다.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황진이는 한양 제일 소리꾼인 이사종을 사랑하여 6년간 전국을 함께 유람하였다. 아래는 그와의 사랑을 그린 시조다.
동지(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 내어
춘풍(春風)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전라도 부안의 기생 매창(梅窓) 역시 시문에 뛰어났는데, 천민 출신 시인 유희경, ≪홍길동전≫을 지은 문관 허균, 후일 인조반정을 주도한 이귀 등 많은 문인, 관료들과 교유하였다. 매창은 28세 연상의 유희경과 연인으로 지냈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촌은(유희경)이 서울로 돌아간 뒤 소식이 없었다. 이에 이 노래를 지어 수절했다.’고 기록되어 있어 매창이 유희경을 그리며 지은 시조임을 알 수 있다.
허균은 “거문고를 뜯으며 시를 읊는데 생김새는 시원치 않으나 재주와 정감이 있어 함께 이야기할 만하여 종일토록 술잔을 놓고 시를 읊으며 서로 화답하였다. 밤에는 매창의 조카를 침소에 들였으니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그 죽음을 듣고 한 차례 눈물을 뿌리고서 율시 2수를 지어 슬퍼한다.”고 했다.
한편, ‘유지사(柳枝詞)’는 율곡 이이가 황해도 관찰사로 있을 때 기생 유지와 교우하였는데 이때 남긴 시이다. 역시 이이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閉門兮傷仁문을 닫아걸면 인(仁)이 아니고
同寢兮害義잠자리를 같이하면 의(義)가 아니라
撤去兮屛障병풍도 치워놓고 같은 방에서
異狀兮異被다른 침상, 다른 이불 덮고 누웠네
영화 <게이샤의 추억> ·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게이샤와 코르티잔
게이샤(芸子)는 전통음악 연주, 무용 공연, 시 짓기 같은 예능에 종사하는 일본의 기생이다. 주로 연회나 술자리에서 손님들을 상대하는데, 게이샤가 성매매를 한 것은 에도 시대(1603-1867) 중기부터의 일이라고 한다.
에도 시대에도 성매매하는 유녀(매춘부)와 그렇지 않은 게이샤는 분리되어 있었지만, 게이샤의 지위에 비추어 마냥 성매매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게이샤가 가수 같은 일반 예술인으로 데뷔하는 것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게이코(藝子)는 교토에서 게이샤를 부르는 말이며, 게이코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5년의 수련을 거친다. 견습 게이샤는 마이코(舞妓)라고 부른다.
한편, 코르티잔(courtesan)은 과거 유럽에 존재했던 왕족·귀족·부유층을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이자 이들의 정부(情婦)를 뜻하는 말이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원래 ‘길을 잃은 여인’이라는 뜻이며,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동백의 여인)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춘희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의 직업이 코르티잔인데 그녀는 연인인 뒤망과 만나 잠시 매춘 생활을 접지만, 여러 사정으로 다시 매춘하여 그와 갈등을 빚었다.
◆오늘날 성매매와 처벌 찬반논쟁
이제 과거의 기생이나 유녀는 없어졌지만, 오늘날 유흥주점, 안마시술소 등에서 다양하고도 은밀하게 성매매가 이루어지는가 하면 인터넷, SNS 등을 이용한 성매매가 퍼지고 있으며, 원조교제 등 청소년 성매매가 문제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강력한 단속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전에도 1961년 제정한 ‘윤락행위등방지법’이 있었고, 정도는 덜하더라도 단속과 처벌이 있었다.
성매매 처벌 찬성론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① 성매매는 여성의 육체를 상품화, 도구화하는 것이며 각종 성병,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② 겉으로 보기에 성매매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자유의지에 따른 거래로 보이지만, 실은 경제적 궁핍에 처한 여성들이 성매매에 내몰리는 것이므로 전혀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③ 매춘이 발달하면 인신매매, 학대와 같은 범죄가 증가한다. ④ 원조교제 등 미성년자들이 성매매로 나서고 있어 폐해가 크다.
성매매 처벌 반대론의 주요 주장은 다음과 같다. ① 성매매 규제는 여성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반한다. ② 성매매를 규제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풍선효과’처럼 음성화되어 변태영업이 발달하게 되며, 오히려 그 과정에서 강간, 인신매매 등 다른 범죄를 유발한다. ③ 연예인 등에 대한 스폰서는 사실상 처벌되지 않고 있는데 성매매와 차이가 없다. ④ 네덜란드처럼 상당수 국가에서 성매매가 합법일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성매매가 불법이더라도 실제로 처벌하지 않고 있다.
원조교제 등 성매매로 인한 각종 문제점이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성매매를 합법화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다만, 성매매 행위 전반에 대하여 무차별적으로 단속하기보다는 문제가 심각한 인신매매, 청소년 성매매 등에 단속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임관혁 검사장 (대전고등검찰청)
파인뉴스 기자 470choi@daum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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