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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나라의 교육과정이 바뀌는 것은 그 나라의 시대적ㆍ사회적 요청일 뿐,그것이 좋다고 우리가 무작정 따라 갈 필요는 없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따라가는 것은 옳지 않단다. 우리 몸 속에 있는 아름다운 나비를 생각해봐!” 맹목적으로 나비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것은 옳지 않는 것 같았지만, 그리 쉽게 믿을 수도 없는 것이다. 어떤 애벌레가 빈정거렸다.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무턱대고 믿을 수 있니? 땅에 있으면서 기어오르는 게 우리들의 삶이야. 우리들의 모습을 암만 들여다보아라! 우리들의 내부에 나비가 들어 있을 법이나 하냐. 최선을 다해서 애벌레의 삶이나 즐기는 거야!”

“어쩌면 그가 옳은 지도 몰라. 우리가 무슨 증거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면 단지 그것이 절실히 필요하니까 내가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단 말인가?” 하고 줄무늬는 한숨을 쉬었다.

트리나 포올로스 ‘꽃들에게 희망을’의 내용 중 일부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수많은 애벌레들이 어딘가를 향해 기어가고 있다. 그리고 다시 커다란 기둥을 기어오르다가 떨어져 죽고 밟혀 죽으면서도 그들의 걸음은 계속된다.

이 이야기는 마치 우리들의 교육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조차 하다. 결과에 대한 믿음이 서지 않는 교육 과정들, 그 과정과 관련된 대부분은 우리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마치 누군가가 그곳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곳을 향해 가고 있으며, 어느새 가야하는 것이 옳다고 믿어지는 것과 같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철학이 반영되어서인지, 시대나 사회의 큰 변혁을 맞아서인지, 과거 미국에서의 스푸트닉 충격처럼 경쟁국에서 국가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안보에 위협을 가해서인지 모르지만 교육과정에 개정 작업은 그렇게 짧은 주기를 거듭하며 지속되었던 것이다.

그런 사이에 교육자들의 교육과정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고, 그렇게 중요하다고 배웠던 교육과정을 잘 이해하지도 못한 채 교단에 서는 우를 범하기 일쑤였다.

적어도 교육과정의 개정 작업은 충분한 준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파생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검토한 후에 개정하여도 늦지 않겠으나 우리의 교육과정은 일단 개정 한 후 나타나는 문제는 그 후에 수정해도 늦지 않다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지 않나 싶다.

교육과정 개정의 중심에는 우리가 있어야 한다. 잘 사는 나라의 교육과정이 바뀌는 것은 그 나라의 시대적ㆍ사회적 요청일 뿐이며 그것이 좋다고 우리가 무작정 따라 갈 필요는 없다.

다른 나라의 교육 철학 및 정책, 사회적ㆍ시대적 요청이 우리와는 다른 것인데 그것이 제아무리 좋다한들 우리에게도 꼭 좋은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과정은 우리나라의 교육 철학 및 교육 정책, 우리의 시대적ㆍ사회적 요청 및 개정의 필요성 증대에 따른 국민의 요구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히 숙의되고 시행착오의 폭과 양을 줄여야 하며, 실험군을 가능한 줄이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무작정 쫓아가는 우를 범하기보다는 한단지보(邯鄲之步)를 반면교사 삼아 그 어느 나라 것보다 훌륭한 교육과정을 수립하는 것은 후손을 아끼고 국가의 장래를 보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이정재 <전 광주교육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