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1995년 5천억 원 비자금 조성을 고백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가 불가피하게 됐다. 문제는 그 방법이었다. 전직 대통령이라는 예우의 변수가 맥락되어 여론에 부응하여 구속 수사할지 고향집에 내려가 있거나 고향 인근의 절간에 들어가는 낙향(落鄕)으로 매듭지을지 관심거리가 되었다. 떨어질 낙(落)자가 들어 있어 낙향하면 형벌 이전의 징벌로 알기 쉬운데 그렇지가 않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낙향한다면 지조있는 사(士)의 굳은 심지의 구현으로 우러름을 받았다. 이성계가 쿠데타로 조선왕조를 세우고 낙향해 있는 고려 말의 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을 찾아가 ‘나를 버리지 말아 주게’하며 도움을 청했다. 이때 목인이 한 말은 이렇다. ‘나라안에 내가 앉을 곳이 없잖소. 망국의 대부는 그저 낙향해 있다가 죽으면 해골을 가져다 고산(故山)에 묻을 뿐이오’ 목은과 상의하여 고향 선산으로 낙향하는 야은(冶隱) 길재(吉再)에게 써준 시(時) ‘나는 기러기 한 마리 하늘높이 떠있네’ 한데에서도 낙향과 지조와의 함수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낙향을 뜻하는 귀거래(歸去來)가 선비의 미덕이요, 지향할 이상이 돼 있듯이 낙향은 선비의 조건이었다. 고봉 기대승, 하서 김인후, 제봉 고경명, 석천 임억령, 학포 양팽손, 고산 윤선도, 면앙정 송순 등도 낙향한 이 고장 선비들이다. 퇴계 이황은 열한 번 임금의 부름을 받고 벼슬을 하고 있는데 벼슬을 그만 두기가 바쁘게 열한 번이나 고향 토계(土溪)에 물러가 살았다. 그래서 아호도 토계에 물러가 산다고 해서 퇴계인 것이다. ‘목민심서’에 보면 선비는 벼슬을 배임받으면 낙향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하고 임지에 가족을 데려가 살지 말라, 영 혈육이 그리우면 아들 하나만을 데리고 있는 것이 덕목이라 했다. 이처럼 낙향은 선비의 조건이요 미덕이다. 비자금의 불법이 드러나서 죄인이 되는 것이요 그 죄인을 지조를 지키고 미덕을 구현하는 낙향으로 응징을 한다는 것은 처벌이 아니라 받들어 모시는 것이 되고 또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정신 전통을 오염시키는 것이 된다. 하니 낙향시키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다. 옛날 처벌인 유배형 가운데 고향에 유배하되 자기집 아닌 집에 연금시키는 본향 안치라는 것은 있었다. 정치적 목적으로 자주 이용됐던 요식형이다. 명종 때 윤원형에게 내린 방축전리(放逐田里)라는 게 있는데 외딴집에서 살 되 일반 거주지나 도성에 들지 못하게 하는 추방형이다. 그런데 왜놈에 쫓긴 추방형도 있다. 구한말 독립운동을 하느라 내 조국, 내 고향을 가고 싶어도 못가고 고향을 등진 애국지사가 그들이다. 한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은 하의돈데 본적은 서울, 부모 묘는 경기도로 옮겨가 버린 인물이다. 함에도 광주광역시는 아첨인지 추앙인지 2005년 공모로 결정된 광주전시컨벤션센터 이름 ‘젝시코(GEXCO)’를 ‘김대중컨벤션센터’로 바꾸고 기념관까지 만들었다. 이는 추앙이 아니라 산자(김대중)의 모독이요, 광주시민까지 무지로 내몬 행위다. 이름을 붙이려 거든 사후에 국제적인 시설에 붙이는 게 옳다. 사후에 붙여진 미국 ‘케네디국제공항’과 프랑스 ‘드골국제공항’처럼, 전라남도도 반성해야 한다. 이달 말 개통이 예정된 목포-압해 연륙교 이름 ‘압해대교’를 ‘김대중대교’로 바꾸려다 반대에 부딪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볼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향 봉하로 낙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왜 부러워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아들 홍업씨를 낙선시킨 민심도 알아야 하고, 더 늦기전에… 고운석<시인. 남광협회장>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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