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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석 칼럼>최고 권력은 아첨에 멍든다 2013년 01월 29일 00시 00분 입력
이렇다보니 높이는 말 듣기 좋은 말 인사법까지 발달, 나라의 법도가 되었다. 한데 고종(高宗)임금도 이런 법도를 지키려 했던 것 같다. 한말 청(淸)나라 대신 이홍장의 알선으로 한국 정부에 참판(차관) 벼슬로 고용된 독일인 묄렌돌프가 부임차 이홍장 대신에게 인사하러 왔다. 이 자리에서 이홍장은 「조선임금 앞에 가면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묄렌돌프는 대신에게도 하지 않던 공경례(恭敬禮)를 어찌 조선임금에게 하겠느냐고 완강한 태도로 표명했다. 이에 이홍장은 「아니야 그러하지 않고는 자네는 되돌아오게 될거야」 했던 것이다. 이에 자극받은 묄렌돌프는 고종을 알현할 때 삼궤구고는 물론 심한 근시안(近視眼)이었는데도 안경까지 벗고 알현을 했던 것이다. 이같이 머리를 조아리는 자기비하는 한국사회에 살아날 수 있는 조건이요, 당위였다. 왜냐하면 한국사회는 서열사회요, 한국사회에 소속된다는 것은 그 서열의 어느 척도에 종적(縱的)으로 소속되는 것이기에 상서열자(上序列者)에 대한 자기비하는 곧 소속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 유학생이 파티에서 처음 만난 한 미국의 여학생이 대뜸 자기 소개를 하는데, 「3대째 장의사를 하는 집 셋째딸…」임을 거리낌없이 내뱉는 것을 듣고 당황했다. 예쁘기로 소문난 이웃마을 박진사댁 셋째딸이면 몰라도 장의사라는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기업을 자기비하하는 습속이 있는가 하는 의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건 서열사회에 소속된 우리의 의식구조가 빚은 오해였다. 구미사회는 그들이 평등하게 서열 없이 소속돼 있는 수평사회다. 장의사집 셋째 딸이건, 박진사댁 셋째 딸이건 종적인 서열이 없기에 비하(卑下)고 존상(尊上)이라는 개념이 개입할 수가 없다. 그 여대생의 자기 소개는 수평사회의 의식구조에서 자연스러우며 그것이 이질적으로 들리는 것은 서열사회의 의식구조 때문인 것이다. 인사하는 수법으로 구미에서는 대등한 입장에서 악수를 하는데 한국에서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절을 함으로써 자기를 비하, 서열을 형성함으로써만이 인사가 성립된다. 미국에서 사는 한 한국인 친척이 휴가때 가족을 데리고 고국에 왔다. 그곳에서 자란 손자가 할머니를 부를때마다 「너」라는 호칭을 썼다. “you”가 「너」라는 것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때마다 아빠는 깜짝깜짝 놀라 교정을 시켜주었지만 이 손자의 「너」는 하루 이틀에 교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또 그렇게 불리울때마다 할머니의 표정에 언짢은 기운이 감돌곤 하여 휴가를 앞당겨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일을 알고 있다. 서양의 1인칭, 2인칭의 호칭은 “I, you” 각기 한가지씩 밖에 없다. 「나」는 누구 할 것없이 평등한 「나」요, 「너」는 누구 할 것없이 평등한 「너」이기에 할머니도 너에서 예외일 수가 없다. 그러나 한국인의 경우 「나」는 36종이나 다른 방법이 있다. 나·저·오(吾)·아(我)·짐(朕)·신(臣)·소인(小人)·불초(不肖) 등. 「너」도 당신·그대·자기·이녁·어른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이렇게 호칭이 많은데도 모두가 비하나 존상하는 차등호칭일 뿐이다. 단 친구끼리만 대등한 호칭을 쓰고 있다. 한데 지금 대통령 당선인을 신격화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옛날의 간신들은 자기 임금이 요순우탕보다 낫다고까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금도 조차 사라져 교수 언론인까지 한 자리 하고파 낯 뜨거운 아첨이 난무한다. 지도자를 후세의 조롱거리로 만드는 건 비판세력이 아니라 듣기좋게 말하는 아첨세력이다. 고운석 <시인·> 파인뉴스 기자 [email protected]  [ 기사 목록으로 ]  [ 프린트 서비스 ]  [ 메일로 보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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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년 3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