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에 관계없이 인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존재이다. 이때문에 우리 한국인은 차(車)가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별나게 감상적이다.

기차가 떠나간 후의 시골 정거장,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와 금테모자 쓴 역장 혼자 그늘을 길게 던지고 있는 장면은 한국인의 정서에 호소하는 것이다.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 보듯 막차가 떠난다는 것에는 이 정서 작동이 배가한다. 그러기에 멀리 기적을 울리며 떠나가는 마지막 밤차는 한국인 정서의 품에 꼭 들어맞는다.

시골 장날 막차가 떠나간 후 갑자기 한산해진 장거리의 개 한 마리는 한국인에게 소리 없는 詩가 된다.

가난한 시골 아가씨가 곡마단에 팔려 떠나가는 날이면, 그 차가 재를 넘어 갈 때까지 온 마을 여인네들이 지켜보며 치맛자락을 적셨던 것이다. 장이 파하면 다음 장이 서고 또 곡마단에 팔려간다는 것이 심청이 처럼 공양미에 팔려 영영 가버리는 것도 아닌데 왠지 떠나간다는 것은 한국인의 정서 속에서 ‘마지막’이라는 효소(酵素)가 분비(分泌)되는 것 같다.

떠나면 오고, 오면 가며, 만나면 갈리고, 갈리면 만난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인 줄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회자정리(會者定離)하면 무상감(蕪常感)이 들고 한숨이 따른 이유는 떠난다는 정서에 바싹 붙어 있는 마지막이라는 효소 때문인 것 같다.

영국 연수 때 각계각층 사람들을 만나게 돼있던 필자는 이 사람들을 위해 영역(英譯)된 한국의 명시선집(名詩選集)을 5~6권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에 관심을 가질만한 사람에게 선물을 하면서 그중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읽어보도록 하고 그 반응을 보았던 것이다.

다섯 사람 가운데 오로지 한 사람만이 이 시에게 정서와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었을 뿐 나머지 네 사람은 왜 이것이 시가 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싫어서 가는 사람 가게 둔다는 그 첫 구절도 합리적 사고를 하는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 미적(美的) 정서가 끼어들 틈이 없다.

가는 사람 앞에 꽃을 뿌리는 행위는 마치 가는 것을 잘 간다고 테이프나 색종이를 뿌리며 찬양하고 환영하는 행위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가지 않기를 바라는 강한 염원이 주제인 이 시의 진국을 맛볼리가 없다.

'진달래꽃’을 아름답게 여긴 단 하나 사람은 당시 명문대의 한국사 교수로 임명된 한국통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달래꽃’은 대체로 영국 사람들에게 있어 한국 사람만큼은 아름답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이와 연관해서 이들에게 우리의 국민 음악처럼 돼 있는 ‘아리랑’의 정서도 살펴보았던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는 연인에게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라는, 이 ‘마지막’ 효소의 역동에 대해 물었다.

만류해도 궂이 떠나는 연인이라면 물리적으로 가지 못하게끔 붙들어 놓든지 그렇지 않으면 단념하고 새로운 연인을 찾는다는 흑백사고로 해결한다는 데 예외가 없었던 것이다. 보내놓고 발병이 나라는 저주는 사랑의 표시가 아니라 신(神)에 거역하고 인륜(人倫)에 거역하는 악의 소행인 것이다.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수백 년 수천 년 사로 잡아온 ‘아리랑’의 비밀도 이 떠난다는 데 야기되는 특유한 정서의 강도에 있으며, 만약 이 노래를 영국에 퍼뜨렸다면 결코 유행된다는 법은 없었을 것이다. 왜일까. 떠난다는 것과 마지막이라는 한국인의 정서 구조의 밀접한 표리성(表裏性)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진달래꽃’에서 간다는 님이, 또 ‘아리랑’에서 간다는 님이 심청이 처럼 영원히 가는 것은 아닐 테지만 한국인에게 그토록 그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마지막’ 효소가 떠난다는 시속의 행위에 복합되기 때문에 정서가 우러나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있어 떠난다는 것과 마지막이라는 두 상황은 미분리 상태로 있는 것이다.

고운석 <시인·남발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