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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또 다시 내년도 예산안 심의를 법정 기한 내에 마무리하지 못함으로써 ‘폐회에 임박한 족속심의’라는 예년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국회의 2대 기능이라는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을 국회 스스로 무력화 시킴으로써 국회의 존재 의의를 훼손함과 동시에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케 하는 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더욱 지금 나라 경제가 제 2의 환난사태에 직면하고 있다고 할 만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라의 살림살이를 짜는 예산안 심의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떠나 과연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에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감세는 어느 부분에 먼저 착수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밤을 지새우면서라도 머리를 맞대고 씨름해야 할 것이다.

예컨데 지금이야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종합부동산세’의 개정이 불가피하게 되었지만, 사실 위축된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부가가치세’를 인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서민들의 지적을 국회의원들이 좀 더 진지하게 경청했어야 할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직불금 부당 수령자’ 명단 공개와 그 처리 방안을 놓고 여야 간에 벌어진 논쟁과 허송세월 또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선적으로는 관련 규정을 마련할 때 허술하게 준비함으로써 그러한 여지를 제공한 정부를 탓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직접 농사를 짓지 아니한 자가 직불금을 수령한 것은 법규를 위반한 것이고, 특히 공직자의 경우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고 청렴해야 한다는 ‘공직자 윤리’를 위반한 것이 분명할진 데, 기히 수령 받은 자에 대해서는 이를 회수하고, 해당자들에게는 공직자 윤리 확립 차원에서 적절한 징계를 내리면 그만이다.

이처럼 단순명료한 일로 황금 같은 국회 일정을 허비한 데서야 국민의 혈세로 지급되는 그들의 세비가 아깝지 아니할 수 없다.

또 하나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근대 이래 민주정치의 근간이 ‘정당정치’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이전에 국회의 기본적 사명과 역할은 삼권분립제도에 근거하여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여야를 떠나 국회 안에서 국회의원들의 투쟁 대상은 상대 당(黨) 소속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바로 행정부인 것이며 상대당 의원은 동료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헌법기관으로써 분에 넘치는 예우와 특권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회의원들은 그들의 투쟁 대상을 상대당과 거기에 소속된 의원들로 여기고 고성과 멱살잡이를 계속하고 있으니, 국민들로서 이 짜증나는 장면을 언제까지 보아야 할 것인지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의 이러한 짜증과 답답함은 아랑곳없이 국회방송을 통해 보도되는 국회 활동상황에서는 국회의원들이 타 의원을 호칭할 때마다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이라는 너스레를 늘어놓고 있으니, 국민들로서는 저쯤 되어야 금뱃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제 곧 성탄절이 다가오고, 금년 한 해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불경기다, 구조조정이다, 감봉이다”하는 우울한 소식 속에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국민들로서는, 밝아오는 새해는 밝고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할 것이다.

이러한 때에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은 이러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 본분을 다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대원칙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