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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은 해석이 분분한 고려가요 ‘쌍화점’ 속에서 신분이나 제도, 윤리에 구속받지 않는 대담한 남녀의 모습을 가져와, 열정적이었지만 차갑게 식어버리는 감정과 그로 인한 배신과 운명을 영화 ‘쌍화점’에 그렸다.

14세기 무렵 고려의 왕(주진모)은 어린 시절부터 36명의 미남 정예 부대 건룡위를 최측근에 놓고 자신을 호위하게 했다. 그중 건룡위의 수장 홍림(조인성)은 단순한 호위무사 이상의 총애를 받는 베갯머리를 함께 나누는 사이다.

후사 문제로 원의 압박이 거세지자 여자를 품을 수 없는 왕은 가장 신뢰하는 홍림에게 왕후(송지효)와 대리합궁을 명한다. 망연자실한 홍림과 원치 않는 합궁을 해야 하는 왕후, 이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왕은 이 일을 계기로 뜻하지 않는 운명을 맞이한다.

남성성을 발견한 홍림과 처음으로 남자를 품게 된 왕후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왕과 홍림 사이에도 균열이 생기며 비극은 시작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등에서 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탁월한 스토리 텔링으로 주목받았던 유하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신작에서는 이야기보다는 영상에 공을 들인 듯하다.

제작 단계부터 숱한 화제를 몰고 온 베드신은 한국 상업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수위로 표현돼 센세이션을 예고한다. 일곱 차례에 이르는 정사 장면에서는 단순한 육체적 합일이 아닌 인물이 느끼는 죄의식, 쾌감, 고통 등 복잡한 감정까지 섬세하게 담아냈다.

적나라하게 잔혹함이 드러나는 검술 장면에서도 검은 호신의 도구이기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분출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왕의 처소와 연등회장, 건룡장 등 주요 공간과 인물의 의상을 통해 보여준 미술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볼거리가 가득한 탓인지 인물의 감정 변화를 드러내는 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왕후로 인해 홍림의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부터 왕을 향한 홍림의 감정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그런 부분이다.

평가가 엇갈리는 여러 요소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열연만은 칭찬이 아깝지 않다.

세 명의 주인공이 모두 그러하지만 당초 조인성에게 쏠렸던 관심 이상으로 무게감 있는 카리스마와 사랑에 나약한 인간의 극단을 완벽히 표현한 주진모, 과감한 노출과 더불어 흔들림 없는 연기력을 보여준 송지효는 이 영화가 발견한 최대 수확이다.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