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많은 사람들에게 한숨을 안겨준 2008년도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30년 넘게 이 땅을 짓눌러왔던 보수 기득권층의 두꺼운 벽을 뚫고 어렵게 피워 올랐던 개혁정권은 10년 만에 그 한계를 드러낸 채 지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역사가(歷史家)가 이야기한 것처럼 역시 역사란 그 시기의 장단(長短)만 있을 뿐 반복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보다.

경제가 말이 아니다. 실제 실물경제의 체감온도는 지난 IMF 경제위기 때 보다도 더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직장에서의 40대 명퇴는 전혀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고, 30대 까지도 명퇴 신청을 받는 곳이 없지 않다고 하니 그 심각성을 짐작하고도 남을만하다.

도대체 이 난국(亂國)을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사회구조로 볼 때, 우리 같은 서생(書生)들이 아무리 근심 걱정을 쏟아낸들 그 해결에 얼마나 보탬이 되겠는가, 역시 이 어려움을 풀 책임과 권한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정치 돌아가는 꼴이 더욱 가관이니 참으로 걱정이 앞설 뿐이다. 경제가 이처럼 어려움에 봉착했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야를 초월하여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할 터인데, 국회는 난장판을 연출하여 세계적 조소꺼리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민주정치에서 여야관계란 기본적으로는 경쟁하고 대립하는 관계인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구미(歐美)에서도 야당을 ‘반대당’(Opposition Party)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근대정치 이래의 정당정치에서 여야관계는 대립과 갈등관계에 있음과 동시에 공존(共存)의 관계에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여당이 없으면 야당이 있을 수 없지만 야당이 없는 여당은 곧 ‘독재정당’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야관계는 견제와 균형에 그 토대를 두면서도 대화와 협력의 정신이 실종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바로 이처럼 상호 모순되면서도 필수적인 여야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로 ‘화이부동’(和而不同)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여당과 야당은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겠지만, 결코 조화(調和)의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치학적으로 표현하면 ‘다수결의 원리’와 ‘소수의견의 존중’, 그리고 견제와 균형에 바탕 한 ‘상생의 정치’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현실은 어떠한가. 그 어느 곳에서도 조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어찌하여 의회의 주인공들인 야당의원의 출입을 봉쇄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마치 합법적 부부관계에 있는 아내의 자택 출입을 봉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아내를 쫒아낸 다음 그 안에서 무슨 짓을 벌이려고 그러는 것일까.

야당 또한 여당이 의사당 출입을 봉쇄한다고 하여 해머나 드릴로 의사당을 두들겨 부수고 있으니, 이는 마치 살림 망가져 자식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것은 도외시한 채 아내의 지위 유지에만 급급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진정으로 인자한 아내요 어머니라면, 길거리에 쫓겨날지언정 주택과 세간이 부셔지는 것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제 또 다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과연 이 땅의 정치인들은 무슨 말로 국민을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 국민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굳은 신념과 함께 ‘따뜻한 가슴’을 지닌 정치인은 누구일까. 세밑에 자꾸 화이부동(和而不同)의 글귀가 생각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정치의 현실이 절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수열 <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