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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태어나면 한번은 죽게 마련이다. 자연사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 의료행위를 수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논의되는 문제의 하나가 존엄사이다. 존엄사는 사람이 사람답게 죽을 권리를 말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임종단계로 들어갔을 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영양치료 등 생명연장 의료행위를 하지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이다. 연명치료의 범위를 넓게 잡으면 안락사에 해당해 그 한계를 놓고 논의가 있지만 안락사는 죽음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는 등의 적극적인 의료행위로 환자의 생명을 단축하는 것이므로 존엄사와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안락사는 허용하기 어렵지만 존엄사는 엄격한 요건하에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달 존엄사 관련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적극적 안락사 및 모든 유형의 치료중단에 관한 것이 아니고, 치료가 무의미하고 환자에게 치료중단의사가 있다고 보이는 경우 의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언론은 이를 우리나라에서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결로 보도했다.

이 판결에 대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윤리위원회는 임종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에 동의하는 입장을 밝혔고, 대한의사협회도 환자측으로부터 충분한 동의를 얻는다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판결을 받은 병원은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함으로써 존엄사에 관한 문제는 상급법원의 판단여지를 남겨 놓았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라고 규정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인간은 법 이전에 생래적·자연법적으로 존엄한 것이므로 그 존엄은 죽음에 있어서도 가급적 유지되어야 한다.

존엄사나 안락사를 쉽게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전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인간생명의 고귀함과 신이 주신 생명을 인간이 스스로 또는 인간에 의하여 단절할 수 없다는데 있다. 또한 존엄사를 인정할 경우 이를 악용할 우려도 없지 않다.

따라서 존엄사는 의료적, 법률적 문제만이 아니라 종교적, 윤리적, 철학적, 사회학적 등 여러 분야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존엄사 문제는 법원이나 의료인의 판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입법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1989년에 말기환자권리법이 제정된 이후 불치병이나 치매에 걸렸을 때 어디까지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자기의사를 밝혀두는 생전유언(living will)이 활성화되었고, 40여개의 주에서 환자가족의 동의 아래 말기환자의 생명연장을 위한 치료중단을 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은 3년간 식물인간상태였던 환자에게 영양공급장치를 제거해도 좋다는 판결을 통해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음은 물론 의사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생명연장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후생성이 마련한 존엄사 지침에 따라 이를 인정하고 있고, 대만은 1980년대에 존엄사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미국 뉴저지주 대법원은 이미 30여년 전에 존엄사 관련 판결에서 “…이러한 불행한 상황에서 만일 카렌(환자)이 기적적으로 잠시 명료한 의식을 되찾는다면 회복이 불가능한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고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라는 결정을 내린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실적으로 지각을 되찾을 수 있는 아무런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국가가 카렌에게 식물인간이라는 견디기 어려운 상태를 유지하라고 강제할 수 있는 아무런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제 우리는 국민들에게 웰빙(well being)을 넘어 웰다잉(well dying)도 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국회는 모든 국민이 처할 수도 있는 인간이 인간답게 죽을 권리에 대한 존엄사 문제를 의식이 없는 환자의 추정의사나 그 가족 또는 법원이나 의료인의 판단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일정한 요건아래 이를 입법적으로 해결하여 법과 현실의 괴리를 메우고 환자와 가족의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덜어 주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하승완 <조선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