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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해머와 밧줄이 등장하고 사무총장 책상 위에서 소수당 대표의 활극이 벌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시급한 민생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국회가 한숨 돌리는 것 같더니, 요즘에는 이른바 ‘쟁점법안’ 심의와 함께 국회에서의 폭력을 근절시킨다는 미명하에 여당에 의해 제기된 ‘국회폭력방지법’ 을 놓고 다시 심각한 대립 상을 연출하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민의(民意)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그 본분에는 충실하지 아니하고 만날 싸움질이나 하는 모습을 좋아할 국민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일반 형사범 다루듯이 처벌하고 국회에서 추방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을 밀어붙이는 여당의 태도는 백번 양보하여도 이해하기 쉽지 않는 ‘비정상적’ 행태이다.

사실 국회에서의 여 ? 야간 몸싸움과 기물파괴가 어제, 오늘의 일인가. 심지어 공화당 시절에는 김두환 의원의 오물투척사건 마저도 없지 않았으니 '신성(神聖)한 민의의 전당’ 이라는 말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구름 속의 수식어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때 오물을 투척한 김두환 의원과 그 대상이 된 국무총리 및 각료 가운데 국민들은 김두환 의원을 훨씬 정의롭고 기개 있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그를 폭력의원으로 기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사에서 가장 암울하고 절망적이었던 시기를 들자면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5공 독재일 것이다. 특히 ‘긴급조치’로 국민들의 기본권과 헌정질서를 송두리째 말살했던 유신독재 시기는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악독함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야당의원들이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고 출입문을 부수는가 하면 명패를 집어던지는 등 기물을 파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을 일벌백계로 다스리는 ‘국회폭력 방지 특별법’을 제정하지는 않았다. 하물며 지금이 어느 때인가. 수십 년에 걸친 민주화 투쟁을 거쳐 문민정부가 등장하고, 여, 야간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했는가 하면 평 검사가 대통령에게 할 말 다하는 그러한 시대가 아닌가.

따지고 보면 국회에서 여 ? 야간에 벌어지는 투쟁과 대립은 그 자체가 정치의 한 과정이라고 보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과 기물 파괴 행위는 그 결과만 놓고 말하기보다는 원인과 과정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더욱이 필자가 보기에 지금 이 시기에 여당이 폭력방지법 제정을 들고 나오는 것은 국민들을 두 번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연말의 극심한 몸싸움 끝에 국회의장의 중재에 의해 비 쟁점법안을 통과시킨 후 여야 교섭단체의 원내대표들은 어느 개그 방송에 나란히 나가 어깨동무를 하고 무슨 노래까지 합창하며 우의를 과시했기 때문이다.

부모 때려죽인 원수처럼 으르렁거리던 사람들이 며칠만에 마치 백년지기나 된 것처럼 노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이 정치를 어떻게 느꼈을까. 어디 그뿐일까,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함께 외유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골프를 즐기는 것 또한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치는 순리에 따라야 한다. 폭력이 지나친 경우에는 현존하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에 의해 제명까지도 가능하게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야당의원들에게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외면하는 독재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수열 교수<조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