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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조22년(1587)의 기축년을 전후하여 민간에 널리 유포되었던 나라운명에 관한 예언. 예사롭지 않은 기축년이다.

설날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은 조선시대 설 그림에서 유래했다. 당시 그림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관청이었던 도화서에서는 설이 되면 임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 부적같은 역할을 하는 그림을 그려 임금께 올렸다.

왕실에서는 설날 이 그림을 궁궐문에 붙였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설 그림이다. 여염집에서는 이같은 관습을 본받아 정월 초하루가 되면 설 그림을 서로 주고받고 이를 문에 붙였다고 하는데 이것이 설 선물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요즘은 새해 달력부터 선물을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선물이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변천을 겪어왔다. 아마도 설 선물만큼 그 시대상을 단적으로 반영하는 것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먹거리 자체가 귀했던 1950년대에는 6·25전쟁까지 닥쳐 겨우 농축수산물이 선물의 대종을 이뤘고 계란, 고추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백화점 선물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로 설탕, 비누, 조미료 등이 당시 인기품목이었다.

1970년대 들어 소위 종합선물세트가 출현, 커피나 과자, 내복 등 선물세트가 유행했다. 1980~90년대에는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갈비, 굴비, 과일, 양주 선물이 많이 팔렸고 상품권이 새로운 품목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데 이렇게 푸짐했던 우리네 민속 설이 갈수록 흥은 빠지고 멋은 엷어지고 있다. 나이를 나눠주다가 저 스스로 나이를 먹었는지 설도 많이 늙었다는 느낌이다. 도무지 흥이 살아나지 않았다.

경기는 곤두박질치고 시장은 썰렁했다. 하늘은 눈·비마저 인색했다.

마른 강추위가 계속되더니 섬에선 식수마져 고갈되고, 낙동강에서 취수한 수돗물에선 다이옥신이 검출되었다. 기축년 설 연휴는 유독 춥고 썰렁했다. 몸보다 마음은 더 추웠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얘기는 눈물겹거나 잿빛이었다. 귀성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덕담보다는 ‘이런 때일수록 몸조심 하라’는 당부의 말들이 유난히 많았다.

참으로 예년에 비해 섣달의 풍경이 음산하였다. 여기다 이도 부족했음인지 설을 준비하는 대목에 큰 일까지 일어났다.

새벽에 경찰병력 18개 중대 1600여 명, 물대포 6대, 10t짜리 기중기와 컨테이너 그리고 소방차가 한 곳에 모였다. 그리고 5층 건물에 경찰특공대를 전격 투입했다.

이 모든 병력과 장비들은 옥상에서 농성 중인 철거민들을 겨냥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힘없고, 갈 곳 없고, 배경도 없는 사람들을 짓밟았다.

여섯 명의 철거민과 경찰이 화염에 휩싸였다. 속절없이, 참혹하게 사람들이 죽었다. 작은 갈비집을 운영하던 70대 노인이 왜 불을 맞고 숨져야 하는가. 유족들은 지금 이시간도 절규한다.

“우리는 사람답게 살려고 발버둥친 죄밖에 없다.” 이 절규를 그냥 두고 우리는 야속하게 설을 쇠었다.

저들의 한이 동천을 맴도는데 우리 어찌 웃을 수 있겠는가. 민심이 심상치가 않다. 그런데 정부의 자세가 궁금하다. 침묵하는 다수가 정부의 편이라고 믿는 것인가.

코뚜레를 끼우고 고삐만 매면 이끄는 대로 가는게 소라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소의 해이니 만큼 소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건장한 소는 손쉽게 고삐를 끊어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맹수도 물리친다. 그 모든 저항의 직전 단계는 바로 침묵이다. 더구나 예사롭지 않은 기축년이다. 정부는 설 민심에 귀 기울여 화를 피해야 할 것이다.

고운석 <시인.남발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