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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물이 사방의 저수지에서 충만한 깊이로 넘실넘실 대면, 농부는 입을 귀에 걸고 한 해의 풍농을 예축(豫祝)하는 것이라며 연방 미소를 자아낸다. 이런 정경은 농촌의 봄날에 대한 내 유년의 기억이다. 지금 전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물이 부족타고 야단이다.

유엔은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로 이름을 올린 지 오래 전이다. 그래서 요즘 같으면 ‘돈을 물 쓰듯 한다는 속담’을 바꿔야 할 상황이 되었으니 속담의 시대적 반영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난다.

우리 민족이 물에 대하여 유난히 관심을 갖고 문화를 가꾸어왔음은 잘 아는 사실이거니와 주거 공간의 예만 들더라도 배산임수(背山臨水)라 하여 집 앞에 물을 두는 형국을 만들었고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좌청룡 우백호라 하여 산의 기운과 물의 드나듦을 매우 중요시하였다.

물은 우리문화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상과 발전 그리고 쇠망의 원형질이었다. 물이 건강하게 넘치면 성하였다가 물이 부족하거나 메마르면 쇠했던 것이 인류 문명의 흥망사였음은 두루 아는 사실 아니던가.

가장 쉽게는 폐사지 곧 절이 오래 흥하지 못하고 없어져 버린 절터를 눈여겨보라. 십중팔구 분명 그 좌우에 물이 부족함을 알 수 있을 테니까. 우리 광주, 빛고을 광주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빛이 떠오른다.

‘빛과 소금’이라 할 때의 빛이요, ‘관국지광(觀國之光)’이라 할 때의 빛남이다. 무등산을 뒤에, 그리고 황룡강을 앞에 둔 광주는 내륙 도시로서의 입지 조건은 잘 갖추고 있지만, 성산 무등산에서 발산하는 눈부시고 찬란한 기(氣)를 온축하고 품었다가, 서리서리 펼쳐낼 수장고가 없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니어서 더욱 애달프다. 경양방죽,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무등산과 짝을 이뤘던 신령한 기운의 창고가, 그래서 마냥 그립고 그리운 것인지 모른다. 사람이나 물건 모두 물이 없으면 생명력을 상실하게 됨은 잘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메마른 대지는 늘 슬프기 마련이거늘 광주의 빛을 오래도록 발산시키기 위해서는, 메마른 내륙 도시의 숨 막힘으로부터 탈출시켜야 한다. 이제와 경양방죽을 새로 복원해야 한다는 말들이 솔솔 피어남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이쯤해서 우리는 ‘4대강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다행히 천우신조로 그 발전 계획에 우리의 황룡강이 포함되어 있다 하니 우리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 ‘도심 호수 조성’에 참여해 보자. 역사는 늘 선각자의 선창으로 주도되거니와 지금 우리에게 있어 선각자는 140만 광주 시민 모두라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명심할 때이다.

시대는 녹색을 요구하고 미래는 준비한 자에게 축복과 번영을 약속할 것이다. 도심의 수변은 무한한 크기의 녹색 가슴을 잉태할 것이고 우리 후손 모두는 그 충만한 깊이의 가슴에서 풍요를 누릴 것이다.

4대강 프로젝트를 ‘황룡강 프로젝트’로 이끌어내어 희망의 싹을 틔울 사람은 당대 우리의 책무이며, 그 싹으로부터 맑고 싱싱한 열매를 따 먹을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의 금쪽같은 자식들이다. 메마른 대지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거니와 그래서 곧 멸망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근시안적이고 소아적인 발전 계획이나 정책 개발은 머잖아 수많은 지탄의 세례를 독차지하고 말 것이다.

광주시민 모두는 광주에 빛만 있고 물이 없어 머잖아 메마른 대지의 비가(悲歌) 소리가 나지 않도록 대승적 화합으로 지혜를 모으고 그것을 바탕으로 생명수요, 젖줄인 물의 비축에 뜨거운 열정을 쏟기 바란다.

발수제(潑水祭), 이는 중국의 소수민족이 벌이는 물 축제의 하나이다. 생명의 근원인 아버지 정자, 그로부터 움튼 생명과 그를 키워낸 어머니의 양수 아, 우리는 그간 물을 너무 홀대했음이 분명하다. 바라건대 우리 광주에 백만 평 정도 크기의 호수 하나 있기를, 그리하여 그로부터 수변 문화가 새롭게 탄생하여 빛과 함께 '소금'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바야흐로 대지는 봄물을 부른다. 동토의 각질을 박차고 일어날 미토콘드리아, 그것은 다름 아닌 생명수, 물인 것을….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