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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무원이나 공직자의 낙하산 재취업에 대한 논란은 정권이 바뀌어도 끊임이 없다. 정권마다 집권 초기면 “낙하산은 없다”는 소리를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시비가 일 때마다 말을 되풀이한다. 이 같은 형태의 반복 속에 정부~공공기관~민간 기업의 민관유착이라는 고리는 여전히 강고한 실정이다.

이렇게 실천하지도 않은 다짐은 연속된다.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1년 2월 당시 모 장관은 “개혁·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공기업 사장이 될 수 있도록 인력 풀을 만들고,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도입해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2003년 4월 모 장관도 “경쟁을 배제한 채 누구를 찍어서 내려보내는 식의 ‘낙하산 인사’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또 2004년 2월 모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은 “재경부 출신 관료들이 산하 단체장이나 협회장 그리고 금융기관장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낙하산 식 인사를 규제하겠다”고 밝혔다.

정권이 바뀌면서 내용이 조금 구체화됐을 뿐 취지는 대동소이하다. 실천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도 똑같다. 재경부 출신은 아직까지 산하 기관장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다. 최근 새로 선임된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한국증권선물거래소, 비씨카드의 최고경영자는 넓게 보아 모두 재경부와 인연이 있다. 여기에 정치인까지 끼어 들고 있는 것도 여전하다. 주택공사, 철도공사, 조폐공사 사장이 그들에게 넘어갔다.

그렇다면 낙하산 인사의 폐해를 살펴본다. 민관유착의 우려가 가장 크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공무원은 “실무자들이 기업 조사를 나가면 공정위 출신 선배가 회사 앞에서 인사와 함께 직원을 소개시켜 주고 한두 마디씩 물어보며 정보를 캐내려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비록 뒷거래나 뒷돈을 제시하지 않고 받지도 않지만 선배라서 한두 마디 정도 말해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선배들이 이렇게 모은 정보를 바탕으로 조사에 대처하는 통에 어려움도 많고 짜증날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또 건설업계로 들어간 건설교통부 출신 일부 고위 퇴직자들은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에 민간 위원으로 참여해 업계나 특정업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실련 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민간위원으로 활약하는 것은 물론 협회 등 이익단체로 들어가 업계의 정책이나 제도 건의안을 정부에 전달하고 업계 사람을 후배 공무원에게 연결시켜 준다”면서 “퇴직 선배가 밥이나 먹자고 해 나가면 업자가 나와 있는 과정을 거쳐 유착과 부패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다” 말했다.

은행, 증권, 보험사 등 금융기관들은 금감원 출신을 감사로 많이 포진시켜 금감원의 감독에 대한 바람막이로 활용하고 있다. 금감원 출신이라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모든 것을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게 업계의 말이다. 일부 금감원 출신 감사는 관련 현안이 있을 때 후배들에게 “너희가 내 밥줄을 끊으려 하느냐”고 윽박지르거나 하소연하기도 한다.

고위직을 여러 명 영입한 대그룹 관계자는 “전문성이나 경륜도 필요하지만 정·관계에 널리 퍼져 있는 그분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면서 “회사가 여러 가지로 어려울 때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공기업을 비롯한 유관기관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부 공기업에서는 일정 액수 이상의 지출에 대해 감사의 확인을 거치는 등 제 몫을 하지만 상당수는 자리 지키기에 그치고 있다. 한 공기업 간부는 “중앙행정부처 출신 감사 중 일부는 고작 한다는 게 출퇴근 체크나 밥값 영수증 확인”이라며 “기업 회계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관행이 이어지면서 낙하산이 많이 내려가는 기관 직원들의 사기는 평균 이하다. 또 해당 기관이 공공부문이냐, 민간부문이냐를 떠나 정부와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사라지면서 서로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노조 모 사무처장은 “정권이 바뀔 때 국정 운영 방향이 달라지면서 이사장을 내려보내는 것은 그나마 이해되지만 본부장급 이상 간부나 이사 대다수가 청와대나 노동부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다”면서 “이들이 4·5급으로 퇴직하고 들어온 공무원까지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공단이 생긴 이래 내부 승진 임원이 거의 없어 인사에 관한 한 사기랄 게 없다”고 지적했다.

또 중앙부처의 한 국장급 간부는 “산하기관이 일을 못해 엄중 경고하고 싶어도 기관장으로 있는 선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때가 많다”면서 “더욱이 내가 언젠가 퇴직하고 그 자리에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돼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업무를 처리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