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무량한 꽃비가 온 산하를 함초롬히 적시는 성하의 초입이다. 묵언으로 제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자연과는 달리 이웃들은 세상살이에 앞이 막혀 팍팍하다고 아우성인데 난데없는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라니, 그만 툭 넋 놓을 수밖에. 서거에 대해 우화(雨花)를 가장한 온갖 말들이 묵은 밭 잡초처럼 참 무성도 하다.

경위야 어쨌든 숙연하고 엄숙하여 전율마저 온 몸을 휘감는데 어쩜 저리 말들이 많은지 씁쓸함을 넘어 조소가 흘린다. 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다. 태어나 죽기까지 그 정해진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를 두고 우리는 평가를 하고 또 평가를 받는다.

평가라고 했거니와 그에는 여러 방법과 기준이 있을 수밖에 없기에 말이 분분함은 되레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는 이 자리에서 고인이 되신 전직 대통령에 대해 왈가왈부하여 또 다른 잡설을 보태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엔 내가 너무 초라하고 감히 무어라고 입을 뗄만한 안목이나 소양이 없거니와 지금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그럴 경황도 없다. 다만 태어나 고향을 떠나는 출향과 다시 그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향이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삼가 고인의 영전에 부끄러움을 덜고자 하기에 떨리는 가슴 추스르며 졸필을 굴릴 뿐이다.

출향이 귀향이라 했거니와 노 대통령의 출향은 어디인가? 잘 모르는 사람은 그 곳이 경상남도 진양 어디에 있는 봉하 마을이라고 한다. 그럴까? 호적상의 출생지는 그 곳이 맞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출생지는 그 곳만이 아니다.

그분의 출생지는 국민의 가슴속이요, 국민의 소망 속이다. 권위와 권력에 염증나고, 편법과 불법, 비리 정치에 신물나며, 가난에 치를 떤 저 숱한 국민들, 그들의 가슴 속에서, 그들의 소망 속에서 노대통령은 출생한 것이다. 그분의 호적상 출생지 봉하 마을,

/봉하(鳳下), 봉황새 내려와, 봉하(鳳遐), 봉황새 멀리 날아가 버렸네. 봉황이여, 그대 세상에 내려와 날개 짓 한 번 제대로 했는가? 국민들 가슴 속에서 왔으니 그곳으로 간다는 건가? 자연에서 왔으니 다시 자연으로 간다는 것인가?

문순태 선생처럼 고향 마을 생오지로 간다는 것인가? 아, 그대 봉황이여, 국민들 소망에서 태어났으니 당연지사 그들의 가슴속으로 돌아 가셔야지요. 하여 그 서러운 가슴들 속에서, 저 미완의 소망 속에서 영원히 영원히 식지 않는 뜨거운 희망의 둥지를 차지하소서…./

그렇다, 국민들 가슴 속으로 귀향한 당신, 이제 당신이 못다 이룬 국민의 소망은 누가 이뤄줄 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간 이겨 낸 국난이 한두 번이며, 척결한 비리와 모순이 어디 한두 건입니까?

모든 것은 다 시간이 해결할 것입니다. 이제 국민들의 가장 가까운 곳, 다름 아닌 가슴속에서 영면하실 당신, 그 위대한 탄생지에서 ‘자연의 한 조각’ 되어 편히 쉬시길…. 위선위선위선, 위선들 앞에 전율하고, 또 전율하며 떨리는 가슴 부여안고 그동안 이기심과 사리사욕, 가면과 탐욕으로 꽉 찬 가슴 속을 파고 또 파내어 무덤을 만드렵니다. 하여 당신을 편히 안장하고, 새소리, 풀 자태, 물노래, 구름 춤, 바람연가, 사람냄새…. ‘생오지’에 있는 것들 모두 당신께 바치렵니다. 하여 ‘저 강물 차오르면’, 봉하가 곧 생오지요, 생오지가 봉하되어 기필코 다시 올 봉황새, 그 새를 맞으렵니다. 우리 더 이상 울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으렵니다. 아니 우리에겐 더 이상 울 겨를도 분노하거나 성낼 여유가 없습니다. 머잖아 날아올 봉황새, 그 봉황새를 맞이할 둥지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고인이시여, 이제 우리 ‘소통’하며 지내렵니다. 당신이 그렇게 바라던 상하, 빈부 가리지 말고 시원하게 속내 털어놓고 ‘소통’하며 살렵니다. 하여 ‘민족의 반역이 죄가 되지 아니한 나라’를 더 이상 우리 후손에게는 물려주지 않도록, 지역을 넘고 이념을 건너며 학연 지연 혈연을 넘어 사통팔달 ‘소통’하며 사는 사회, 그런 사회 이루며 살렵니다. 물론 감언이설 ‘우화’로 우리의 소통을 막는 자 어찌 없겠습니까마는 하, 그것이 어찌 우리의 장애가 되겠습니까?

임이여, 당신의 빈자리는(空谷) 비움이 아니라 공곡만응(空谷萬應), 비움으로 울리는 수 만가지 감응, 감응입니다.

최한선<전남도립대학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