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면 ‘높이높이 흥하라’는 고흥(高興)이 다도해 자락에 위용을 떨치고 있다.

산과 바다가 짝을 이룬 천혜의 원생성 자원의 보고인데다 유래가 오래인 유적과 명성이 자자한 인물 등 인문사회자원의 풍부함은 사람들의 발품을 흡입하기에 안성맞춤이어서 날이 갈수록 찾는 이는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군 당국의 ‘8품 9미 10경’의 고장 고흥이라는 적극적 홍보 전략이 보태져 고흥은 문화관광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무언가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허전함이 있는 것은 왜일까?.

필자는 걸핏하면 남도의 여기저기를 탐방하곤 하는데 며칠 전 호젓한 산사를 가고 싶어 친구 내외랑 '능가사'를 찾았다. 사찰의 유래와 역사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수령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수목의 군락과 보물이 두 점이나 있다면 사찰에 대해 아무리 문외한인 사람도 그냥 스쳐 지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능가사 초입, 사격을 알리는 일주문이 없다. 어라, 이게 어인 일인가? 사찰의 기본인 삼문(총문) 가운데 하나인 일주문이 없다니 그것은 집에 호패가 없는 격이요 책에 제목이나 목차가 없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천왕문에 사찰을 알리는 편액을 걸어둔 우수운 사연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실소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크기와 조형술에 있어 괄목할만한 천왕문 내의 사천왕상을 설명하는 내용이 온통 뒤죽박죽 틀리게 걸려 있는 등 부끄러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문화재를 가르치고 교육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냥 알 수 있는 것들인데 왜 저럴까? 유명 사찰이 없는 다른 시·군에서는 기록에 나와 있는 옛 사찰을 재건하기 위하여 부단한 애를 쓰고 있건만 있는 사찰 그것도 보물이 두 점이나 있으며 적어도 수수 백 년 동안 이 땅 이 백성과 동고동락해온 역사의 증인이요 삶의 동반자였는데, 씁쓸한 미소 한 줄 지울 수가 없었다.

평지 사찰인데다 천왕문에서 대웅전까지 일직선의 가람배치를 하고 있어서 본전인 대웅전의 웅장함이나 신비함이 감소되고 있음은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니다. 대개 이런 경우 천왕문과 대웅전 사이에 인왕전을 두어 본전이 한 눈에 보이지 않도록 차경(借景) 효과를 쓰기도 하는데 '능가사'야말로 일주문-천왕문-인왕문-대웅전의 가람배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뿐만 아니라 천왕문에서 직선으로 대웅전 방향으로 진입하기보다는 오른쪽으로(대웅전에서 보면 왼쪽) 방향을 선회시킨 다음 비교적 넓은 공간이 있으니까 그 곳에 나무를 식재하여 대웅전이 보이지 않도록 차단 효과를 살린 뒤 중간에 인왕전을 건축하여 그 곳을 통과한 뒤 대웅전으로 가게 하는 방법이 마련된다면 신비감은 물론 진입의 오묘한 맛을 느끼게 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아쉬운 가운데 그나마 우리의 발길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 준 것은 정용선·곽정아 부부 해설사가 안내해 준 쌍충사와 남포 미술관의 방문이었다.

이대원 장군과 정운 장군을 모시고 있는 쌍충사, 그 초입에 철갑을 두룬 소나무들, 저리 여태 당당한 기상으로 남녘 고흥을 지키고 있다니 왈칵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잠시 두 분 앞에 머리 숙이며, 누가 이 나라를 지켰을까? 어떻게 지킨 이 나라 이 땅인데 함부로 파고 마구 헤집고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것인가? 한없는 분노 바다에 던지며 그래도 고향을 위하여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문화공간으로 훌륭하게 살려낸 곽형수 남포미술관 관장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대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남녘의 사람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예술체험을 주선해줌은 물론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관광과 체험 학습을 겸하고 있는 남포 미술관, 그 곳은 흔히 보는 그림의 무덤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박제된 미술관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이곳은 월별로 초대, 교류전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클래식, 트롯 등 다양한 음악회는 물론 인근 명소를 찾는 이의 편의를 위해 숙박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고흥은 물론 인근 보성 순천 여수에 울려지는 예술의 향연이라니, 그렇다! 콩 심은 데 콩 난다 했다. 남녘 예술의 선봉장, 그대 향기 영원하기를….

최한선 <전남도립대 교수·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