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자살은 인생에 패배했다는 것, 혹은 인생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허나 어떤 경우는 자살이 성공하기도 한다. 한데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되었을 당시 성안에 있던 선비들은 자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크게 쟁점이 됐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는 머리카락 하나라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선비의 기초조건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승이던 장유(張維)는 이 쟁점을 두고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오직 임금님을 모시고 있다가 적에게 잡혀 항복을 강요당하면 굴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내 손으로 내 목을 찌르지 않더라도 적이 대신 칼질을 해주지 않겠는가. 선비로서 잘 죽는 도리는 오직 이 길밖에 없는 것이다.” 하고. 선비의 자살관이 잘 드러나 있음을 본다. 요즘은 목숨이 헌신짝이라도 되는 듯 끊고, 인터넷을 통해 자살 동호인까지 모집하고 있는데, 옛 유럽에서는 자살은 살인과 맞먹는 범죄로서 처벌을 하였다. 자살미수를 하면 완전히 치료시킨 다음 교수형에 처했고, 자살에 성공하더라도 그 시체를 교수대에 묶어 공개하거나 말로 하여금 시체를 끌고다니게 하여 만인에게 구경을 시켰다.

자살자의 재산은 국왕이나 봉건주에게 몰수당했으며, 자살자의 시체는 교회의 장례나 교회묘지에 매장되는 것도 거부당했다. 13세기에 가톨릭신학을 집대성한 토머스 아퀴나스는 자살은 타살 이상의 중죄라 단정하였고, 단데는 그의《신곡(神曲)》에서 자살자가 지옥에서 받는 책고(責苦)를 타살자 못지 않게 가혹하게 다루고 있다.

유럽에서 자살을 범죄로 다루지 않게 된 것은 프랑스혁명 과정인 1791년이었고, 가장 늦게까지 처벌을 한 나라는 50년 전에 자살처벌법을 폐지한 영국이다. 1946년에서 1955년에 걸친 10년동안 잉글랜드에서 총 5천7백94명이 자살미수 죄목으로 기소되어 형을 받고 있다. 이 영국의 자살관이 미국으로 고스란히 이식되어, 비록 그 행위가 법적 제재는 받지않고 있지만 자살을 패배자나 비겁한 자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행위로 악덕시하는 것이 상식이 돼 있다.

한데 그 정신적 전통을 지닌 미국에서 청소년들이 2분당 1명 꼴로 자살을 시도하는 자살 열병이 요즘 일본이나 한국에서와 같이 극성을 떨고 있다 한다. 이 자살률이 과거 우리 보릿고개 시절에 비해 3배나 늘어난 것이라 하니 놀랍다. 아프리카 빈민국이나 거지는 자살을 하지 않는데, 주의를 끄는 것은 그 모두가 대부분 유복한 집 자녀라는 점이다.

이 자살유행의 큰 원인은 자살에 대한 전통관념이 이지러진 데다가 잘살게 되면서 잘살아보려는 활력이나 달성동기, 성취욕구를 상실한데 있다하여 우리와는 달리 미국 동부지방에서는 자녀들을 위해 ‘적당히 못 사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잘살기가 못살기보다 몇 곱절 힘겨우니 적절히 어렵게 살기를 권한 순자(荀子)의 말이 새삼스럽다.

한데 전직 대통령이 힘겨워 세상을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의 ‘박연차 로비’ 수사로, 고통에서 해방된 길을 택해, 자신이 자주 오르내리던 집 뒤편 부엉이바위에서 30m아래로 몸을 던졌다. 가족에게는 운명이니 받아들이라는 유서도 남겼다. ‘바보 노무현’ 모습이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

온 국민이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정적들까지도 옷깃을 여미면서 떠나간 그를 애도한다. 슬픈 승부수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시 성공했다. 이젠 책도 읽고 글도 쓸 수 있는 곳으로 갔으니 편히 쉬소서. 국민은 당신을 잊지 않을 것이니....

고운석<시인.남구발전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