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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거의 전쟁과 같이 흥분시키며 그만큼 위험하다. 전쟁에서는 한 번 죽을 뿐이지만 정치에서는 여러 번 죽을 수 있다. 하여 정직은 최선의 정책이요, 부허(浮虛)는 패망의 원인이다.

한데 이 고장에 ‘청백리 이정표’를 세운 선비가 있다. 그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 박수량인데, 첫째, 임금은 여자를 삼갈 일이다. 둘째, 아첨은 나라를 어지럽힌다. 셋째, 백성은 나라의 주인이다. 넷째, 청탁은 모든 일을 그르친다. 다섯째, 사사로운 정은 공도(公道)를 망친다. 여섯째, 재물은 나라의 재산이다. 조선 명종에게 공직자들이 꼭 지켜야 할 이 지침을 만날 때마다 강조한 장성 선비 하남 박수량(河南朴守良)1491~1554는 문민정부 시대에 운동으로 펴고 ‘윗 물 맑기’에 앞장을 섰다.

현대사의 빗장을 열어젖힌 이후에도 민중의 입살에 오르내린 그 많은 지도자 중 조선 선비 박수량이 강조한 여섯가지를 잘 지켜내 존경을 받았던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죽으면 내 무덤에 빗돌을 세우지 말아라.” 공적을 치하한답시고 세우는 그 빗돌 하나도 민중의 밥일진대 애써 낭비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건만 그의 죽음을 접한 명종대왕이 이틀간이나 식음을 전폐하더니 백비(白砒)를 내렸다. 조선 역사를 통해 단 하나밖에 없는 백비! 적을 말이 너무나 많아서 차라리 백지로 남겨버렸는가.

아니면 앞으로 더 많은 얘기를 하기 위해 입을 꼭 다물고 있는건가. 박수량은 1513년 24세때 진사시에 합격하여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예조좌랑, 사간원, 형조정량과 보성군수를 지냈다. 1542년엔 어머니상을 당해 삼년간 복제를 마친 후 입지를 사양했다. 5년 후에야 벼슬에 나간 박수량은 1547년 4월 명종을 모시고 강연을 하면서 아뢴다.

“5월이 가까워 오는데도 요즘 서리와 우박이 내리는가 하면 전염병이 크게 번지고, 비가오지 않아 보리 밀이 말라죽고 있습니다.”고.... 또 대안과 비전을 임금께 아뢰며 민초들을 걱정하건만 1552년 2월 29일. 박수량은 주위의 모함을 받아 권력형 부정축재로 은밀히 내사를 받는다. 암행어사가 두 차례 출동해 박수량이 사는 장성 아치실까지와 땅문서 조사를 받게 됐다. 마침 그날은 비가 와 황룡강에 물이 찼고 하룻밤을 묵게 된 암행어사는 집이 새서 삿갓으로 방 가운데를 가리고 있는 박수량을 보았다.

암행어사가 사실 그대로 명종에게 고하자 명종을 크게 감복했다. 후에 신임이 두터워져 청백리에 녹선되니 박수량은 분명 청백사상이 월등한 선비였다. ‘우주의 생성과 자연의 합일에 순응하는 이 법을 스스로 제현’한 사람, 청심(淸心)을 가득 품은 이에게 내리는 최상의 칭호를 받았다.

다산 정약용이『목민심서』에서 “청렴은 수령의 본무요 모든 선의 근본이며 덕의 바탕이다. 청렴해야 백성이 따르고 충성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듯이 관리의 청렴은 관리의 생명과도 같은 것으로 ‘청렴한 관리’를 선정의 표본으로 삼았다. 최근 우리는 본연의 자세를 잃은 공직자들의 부정축재를 적나라하게 보면서 규탄의 대상이 된 그 관리들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내 무덤에 빗돌을 세우지 말아라”한 박수량의 청백 사상이 그리워진다. 한데 요즘은 부자들 뿐인지 100억을 우습게 알고, 수십억대 비리검찰 수사를 비난까지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서 나타난 일부 여론이지만, 청백리 박수량이 잘못 산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백비를 뽑거나 먹칠을 해야 한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당부한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한 비석도 크게 세워야 한다. 많은 애도의 글도 세겨 놓고, 청백리가 부끄러워지게....

고운석<시인.남구발전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