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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하신 후 길을 지나가는데, 나이 지긋한 몇 분이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금년에는 큰 별들이 많이 떨어질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되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되었으며, 며칠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逝去)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 때 일이 생각났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김대중선생’으로 많이 불렀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대통령은 ‘이승만박사’였고, 장면총리도 ‘장면박사’로 통했다. 대통령이나 총리보다 ‘선생이나 박사’ 훨씬 좋은 모양이었다.

선생(先生)이란 흔히 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을 말하지만, 진짜는 이 나라의 스승을 선생이라 부른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죽어서 학생(學生)이 된다. 제사 지낼 때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란 지방을 쓰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선생이란 칭호를 받는다는 것은 많은 공부를 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율곡선생, 이퇴계선생이라 부른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늘 책을 읽고 공부를 했으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수첩을 꺼내들고 적었으며, 다방면에 걸쳐 박식했던 것도 사실이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車書)’란 말이 있다.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5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옛날 1수레에 6백권을 실었으니, 3천권을 읽어야 박사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의 10배인 3만권이나 읽었으니, 이 나라의 스승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 속에서도 인동초(忍冬草)처럼 살았다.

한국 현대사에서 극적인 삶을 살며 큰 족적을 남긴 인물도 드물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의 학력으로 학연(學緣)도 없이 국회의원 6선을 거쳐 대통령 자리에 올랐으니 이보다 고난을 겪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 재임시절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해 한국경제의 풍랑을 가라앉혔으며, 처음으로 남북(南北)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 공로로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니, 준비된 대통령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병실의 마지막 풍경도 사뭇 아름다웠다. 민주화 동지였음에도 20여 년 반목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화해를 선언했고, 상도동과 동교동 인사들도 다시 손을 잡았다.

1980년 그를 사형으로 몰고 갔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병실을 찾았으며, 박해를 가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표도 찾아 문병을 했다. 그는 현대사의 거목이며, 그의 인생에는 현대의 역사가 압축돼 있다.

그는 평생 투쟁과 핍박, 패배와 승리, 화합과 갈등이라는 수레바퀴를 타고 역사의 축을 격렬하게 돌았으며, 패배하기도, 승리하기도 했다.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북한에 준 몇 억 달러에 대하여 논란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일관성 있게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하나의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대북(對北)정책은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부분이 있지만, 남북 정상회담 등을 통해 남북 간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금강산관광은 물론 개성관광, 그리고 인적 경제적 교류와 협력, 이산가족 상봉을 활발하게 이끈 것은 그의 커다란 성과로 볼 수 있다.

완벽한 지도자는 없으며, 시대상황에 따라 효용성이 다르고, 공(功)과 과(過)의 무게가 다른 지도자가 있을 뿐이다. 그를 보다 더 정확한 역사의 저울에 올리려면 시간이 훨씬 더 필요할지 모른다. 거목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 늘 한결같은 자리에서 그의 영혼이 한국인과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그는 불굴의 투지로 역경을 극복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네 번째 출마해 비로소 금배지를 달았다. 대통령 당선도 네 번의 도전 끝에 이룰 만큼 남다른 집념의 소유자였다. 3김 시대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의 피해를 주었다.

역대 대통령 중에 이승만(李承晩)대통령은 건국대통령으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경제발전의 대통령으로 김대중(金大中)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확립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 동신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