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북에서 남으로 아니, 쉬운 말로 백두에서 한라로 산야가 물든다. 울긋불긋 한껏 단장을 하고 겨울 채비를 나서는 모습이라니 그 살뜰한 정성은 첫날밤을 준비하는 신부 마냥 거룩하다. 매양 단풍을 보면서 저 모습은 왜 저리 붉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주 오래된 그런 생각에 우문현답이랄까, 내 나름 답을 찾았다. 단풍은 사람의 모습을 닮으며 여러 사람들, 그 다양한 삶의 신고(辛苦)만큼 단풍은 여러 가지 색깔로 붉기 마련이라고.

예전 공자나 석가, 예수의 모습이 지금의 단풍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그래 성인이 왜 성인인가 하는 당연함에 그만 머리 숙여질밖에. 성인은 처음 자신들의 모습으로 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 위정자들에게 경종을 울렸지만, 정신 못 차리고 실정만 해대는 위정자들의 오만 때문에 자꾸만 늘어나는 사람들의 팍팍한 모습을 다 나타내 보일 수 없음을 깨닫고, 마침내 말과 글을 통하여 다시 경고를 하였으니 이른바, 불경과 유교 경전 그리고 성경이 그 것 아니겠는가? 못 믿겠거든 새벽 양동시장을 가보라.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신고(辛苦)인가를, 비록 겁나게 오만한 그대일지라도 대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단풍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금세 노랗거나 붉은 색 일색이라는, 아주 단순하다는 생각에 젖을 것이다. 많은 색인 줄 알았지만 결국 한 색 혹은 두 색인 단풍, 이 땅의 사람들이 오십육 억 명쯤 된다 하는데 왜 그렇게 단순할까? 단풍은 사람의 모습을 닮은 다면서…. 그래, 맞다. 세상의 사람들이 많기야 하지마는 그 많은 사람들을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떠도는 개밥통’ 정도로 간주해버리는, 오만불손한 전제주의자가 판을 주도하고 있음이 분명 하렸다.

그래서 자연이 온몸으로 그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것이리라. 예전 석가, 공자, 예수가 그랬듯이. 이제는 보다 못해 자연이 직접 나섰으니 어쩜 전제주의자들에게는 최후의 통첩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얼마 전 한라산에 올랐다. 백록담은 빼빼 말라 가쁜 숨을 헐떡이고 있는데 일천구백오십 미터 정상 언저리엔 하얀 고사목과 청 푸른 소나무들이 단풍 속에 의연히 서 있질 않겠는가.

아, 맞구나. 저 노랗고 붉은 색 일색의 단풍 속에 희고 푸른 고사목과 소나무의 고고한 자태라니, 과연 저 불굴의 몸짓이 보여주는 상징은 무엇이란 말인가?

전제는 안 된다는 묵언의 무량한 말씀,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며 애써 사람 ‘인(人)’ 자로 현시하는 인류애를 단단히 기억할지어다. 부분 집합이 모여 합집합을 이루고 냇물이 모여 샛강을 이루며, 샛강이 다시 바다가 되는 부분과 전체에 대한 자연과 이치의 가르침 앞에 그대, 전제주의자는 딴 맘먹지 마시게나.

막히면 썩는다는 평범한 진리는 단지 그것이 어디 물만 두고 하는 말이겠는가? 생각이 막히면 개나 돼지 같은 하등동물이 되며, 사람이 막히면 사회가 썩고마는 무시무시한 가르침을 삼가 명심하기 바란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가 끼었다고, 그래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누천년 이 땅을 지켜온 산과 강이 없어진 것 아니질 않는가? 한라산의 단풍, 그 단풍 공화국을 간절히 바라며, 햇볕 앞에 맥없이 사그라지는 소통 부재의 전제(專制)에 대해, 다시는 이 땅에 그런 후예(後裔) 없기를….

최한선 <전남도립대학 교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