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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事成語- 안신 雁信(136회) | | | 입력시간 : 2010. 01.15. 00:00 |   |
■안신 雁信 [기러기 안/믿을 신] ☞편지(便紙), 소식(消息), ≒신음(信音), 안백(雁帛), 안보(雁報), 안사(雁使), 안서(雁書), 안백(雁帛)이라고도 함.
[출전]『漢書』, 蘇武傳
[내용] 漢의 무제(武帝) 때 주랑장(中郞將) 소무(蘇武)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북방의 흉노족에 포로로 잡혀 한군의 포로 교환의 임무를 띠고 갔다가 흉노의 내란에 부딪쳐 일행이 다 붙잡혔다. 항복하지 않으면 처형하겠다는 위협에도 불구하고 소무는 항복하기를 거절하였다.
흉노는 그를 움에 가두고 끼니도 대주지 않아 모전(毛纏 : 짐승의 털로 짠 요)을 씹어먹고 눈(雪)을 받아먹으며 기갈을 이겨냈다.
며칠이 지나도 소무가 죽지 않는 것을 본 흉노는 북해로 보내 양을 치게 하였다. 그들은 숫놈 양만 보내주고는,“수컷이 새끼를 낳으면 돌려 보내주겠다.”하는 것이었다.
무제가 죽고 소제(昭帝)가 즉위하자 흉노에 사자를 보내어 소무를 송환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랬더니 소무는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그 날밤 소무와 함께 가 있던 상혜(常惠)라는 사람이 사신을 찾아와 귀뜸해 주는 것이 있었다. 사신은 이를 듣고 흉노를 찾아가“한의 천자가 상림원에서 사냥을 하다가 기러기를 떨어뜨렸더니 다리에 비단이 매어있고(雁帛) 거기에 소무가 큰못(大澤) 안에 있다고 적혀 있었소.
소무가 분명 살아있소.”이 말에 흉노는 어쩔 수 없이 실토하고 소무를 북해에서 데리고 와 석방하였다.
■ 안심입명 安心立命 [편안할 안/마음 심/설 립/목숨 명]☞생사(生死)의 이해에 대하여 태연함. 생사의 도리를 깨달아 내세의 안심을 꾀함.
[출전]『맹자』, 불교
[내용]유일 ·절대의 최고신을 내세우지 않는 불교나 유교, 또는 그리스 ·로마의 사상가들이 궁극의 경지를 추구한 결과, 아무것에 의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완전히 평정(平定)한 편안함에 달한 마음의 상태.안심(安心)은 불교용어이고, 입명(立命)은 《맹자(孟子)》의 진심장(盡心章)에서 온 말인데, 후세에 선종(禪宗)에서 이 말을 받아들여 선수행을 통하여 견성(見性)의 경지에 다다른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고 있다.
■ 안자지어 晏子之御 [늦을 안/아들 자/어조사 지/마부 어]
☞안자의 마부. 변변치 못한 지위를 믿고 우쭐대는 기량이 작은 사람
[출전]『史記』 管安列傳
[내용]안영(晏영)은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신으로 영공(靈公) 장공(莊公)을 섬기고 경공(景公)때는 재상이 되었다.
재능이 뛰어나도 겸손한 안영은 제나라를 천하의 강국으로 만들 만큼 치세 (治世)의 능력도 있었다. 그의 언행은 공자(孔子)에게도 영향을 미칠 정도여서 안자(晏子)라는 경칭이 붙여졌다.
어느 날 안영이 외출을 하게 되어 마차를 타게 되었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부리는 어자(御者·마부)는 마차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경외(敬畏)의 눈빛으로 길을 비키거나 엎드리곤 해서 마치 자기가 위대해진 듯 착각하여 우쭐거리며 마차를 몰았다.
그 날도 마부는 목을 뻣뻣이 하고는 득의만면(得意滿面)한 표정으로 말채찍을 휘어잡고 마차를 몰고 있었다. 마차가 집 앞을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은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살며시 내다보았다.
재상 안영은 다소곳이 앉아 있는데 마부 주제인 남편의 모습은 너무나 역겨웠다.
그 날 저녁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아내가 느닷없이 이혼하고 싶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남편이 그 이유를 물었다. "안자(晏子)께서는 키가 6척도 안되지만 재상이 되셨고 그 명성도 자자합니다.
그런데도 의연하고 겸허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8척의 거구로 남의 마부가 되어 우쭐대고 있으니 그런 당신과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로부터 크게 무안을 당한 마부는 그 후부터 사람이 싹 달라졌는데 그 까닭을 알게 된 안영은 가상히 여겨 마부에게 벼슬을 천거했다
■ 안중지정 眼中之釘 [눈 안/가운데 중/어조사 지/못 정]
☞눈에 박힌 못이라는 뜻, 곧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의 비유. 몹시 싫거나 미워서 항상 눈에 거슬리는 사람(눈엣가시)의 비유
[출전]『新五代史』〈趙在禮專〉
[내용]당나라 말, 혼란기에 조재례(趙在禮)라는 악명 높은 탐관오리가 있었다. 그는 하북 절도사(河北節度使) 유인공(劉仁恭)의 수하 무장이었으나 토색(討索)질한 재무를 고관대작에게 상납, 출세길에 오른 뒤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晉)의 세 왕조에 걸쳐 절도사를 역임했다.
송주(宋州:하남성 내)에서도 백성들로부터 한껏 착취한 조재례가 영흥(永興) 절도사로 영전, 전임하게 되자 송주의 백성들은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 놈이 떠나가게 되었다니 이젠 살았다. 마치 '눈에 박힌 못[眼中之釘]'이 빠진 것 같군."
이 말이 전해지자 화가 난 조재례는 보복을 하기 위해 1년만 더 유임시켜 줄 것을 조정에 청원했다. 청원이 수용되자 그는 즉시 '못 빼기 돈[拔釘錢(발정전)]'이라 일컫고 1천 푼씩 납부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미납자는 가차없이 투옥하거나 태형에 처했다. 이처럼 악랄한 수법으로 착취한 돈이 1년 간에 자그마치 100만 관(貫)이 넘었다고 한다.
■ 안하무인 眼下無人 [눈 안/아래 하/없을 무/사람 인]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 교만하여 사람을 업신여김
[동]방약무인傍若無人, ≒안중무인
■ 안항 雁行 [기러기 안/줄 항] ☞남을 높여 그 형제를 이르는 말/남의 의좋은 형제
[참고]兄弟(형제). 同氣間(동기간). 天倫(천륜). 同根(동근). 昆季(곤계). 使君과 叔氏(사군과 숙씨). 叔伯(숙백). 與我同父母者爲, 兄弟 . 兄弟, 同受父母遺體, 與我如一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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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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