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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치를 하려면 개인 투표자가 지적으로 현명해야 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사심이 없어야 한다. 한데, 선거는 혈기왕성한 사람을 빼고는 전쟁만큼 나쁜 정신적 전율이다. 비방과 부정이 난무하고 폭행과 살인사건도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1963년 중앙선관위가 발족됐다. 그런데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헌법상 독립기관을 순시해도 되느냐"고 1964년 초 당시 사광욱(史光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무소불위의 박정희(朴正熙) 정권에 일갈했다. 박 대통령의 순시는 '중앙선관위=대통령의 하부기관'이란 잘못된 인식을 국민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963년 1월 21일 중앙선관위가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정식 발족하기 전까지 선거 관리는 행정의 일부처럼 여겨졌다. 1948년 3월 제정 공포된 국회의원선거법은 선거위원회를 내무부 부설 기관으로 규정했다. '중립성 시비'는 태생적 한계였던 셈이다. 그 비극적 종말이 1960년 3·15부정선거였다. 같은 해 4·19혁명은 선관위의 독립성을 헌법에 새겨 넣은 역사적 계기가 됐지만, 독립성이 저절로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1967년 7대 총선 때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는 관할 경찰서장과 읍장의 주도로 공개투표가 실시됐다.

1987년 대선 때 서울 구로 을 투표함 사건은 선거 부정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여전함을 보여줬다. 1988년 13대 총선 서울 영등포 을 선거 관련 소송에서는 '선관위가 불법 선거운동을 고발하지 않은 것도 선거 무효의 원인이 된다'는 치욕스러운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선 한준수 전 충남 연기군수와 이지문 중위의 관권 선거 폭로가 잇따랐다.

선관위의 독립성은 이처럼 '아픈 만큼 성숙' 하는 과정을 겪었다. 이 중위의 내부 고발로 부재자 투표소의 영내 설치가 금지됐다. 1992년 15대 대선 때 기표봉의 '○' 안에 'ㅅ' 표시를 넣었다가 이것이 당시 김영삼(金泳三) 후보의 머리글자(ㅇㅅ=영삼)란 오해가 생기자 다음 선거부터 'ㅅ'대신 'ㅏ'로 교체했다. 2004년 3월 3일 노무현(盧武鉉) 대통령에 대한 중앙선관위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결정은 대통령 탄핵안 국회 표결이란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온 단초가 됐다.

선관위 직원이 가장 싫어하는 표현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선거관리 중립내각' 또는 '선거관리 거국내각'. 행정부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표현임을 이해하지만 선관위의 독립에 대한 국민적 오해를 낳았기 대문이다. 하지만 선관위도 날로 지능화된 선거사범을 단속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일부에선 선관위의 감시와 단속이 너무 심하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선관위는 2004년 총선 때부터 지구당이 폐지됨에 따라 출마 예정자들까지도 사조직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어 단속이 힘들단다. 선관위에 따르면, 정치인·정치지망자와 관련된 조직 및 단체는 전국적으로 1천411개다.

이 중 산악회가 200개로 가장 많고 개인 연구소 163개, 동호인 모임 80개 등이다. 선관위의 중점 단속 대상은 ▲후보자 선거운동을 위해 설립한 것으로 판단되는 연구소, 향우회, 산악회, 조기축구회, 정당의 외곽단체 ▲선거사무소 또는 정당선거사무소와 같은 건물에 위치하거나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는 조직 단체로서 회원과 선거사무소 관계자가 서로 왕래하는 조직이다.

또 ▲연구능력이 없거나 연구활동이 없는 다수의 선거구민을 회원으로 가입시킨 연구소 ▲정당의 간부나 정당 선거사무소 소장 등이 당원이 아닌 선거구민을 포함해 설립한 조직단체 등도 주요 단속 대상에 포함됐다.

한데, 광주광역시와 자치구에 따르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등록 위장전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법도 다양했다. 하나의 번지에 무려 20여 세대가 주민등록을 하거나 공터나 마을회관에 등록된 경우까지도 있었다. 선거를 앞두고 입당 '폭주'와 함께 과열현상이다. 각종 '사전 선거운동 사범'은 유권자의 책임이 더 큰 것 같다. 그럼에도 선거사범 단속을 선관위에만 책임 지우는 것 같다.

고운석 <시인.광주남구발전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