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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선거는 권력에 대한 심판과 분열에 대한 경고의 역사이다. 아무리 센 권력도 주권을 가진 유권자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때문에 선거에 나가는 정치인(후보)들은 태풍보다 더 무서운 민심풍이라고 한다. 한데 이 민심풍도 투표날 날씨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각 정당과 후보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이는 모든 산업과 선거의 역사가 긴 미국은 먼저 알았던지 날씨 연구를 하고 있다.

사설(私設) 일기예보 업체까지 번창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중 전통이 있는 업체는 크리크웨더 서비스를 든다. 1931년에 캘리포니아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크리크는 때마침 불황(不況)이 몰아닥친 때라 취직을 할 수 없게 되자 앞으로 항공산업이 발달할 것으로 판단, 기상 기술자가 되겠다고 작심하고 그 방면에 열심히 파고들었다. 1933년 어느 항공회사에서 대서양 연안에 맹렬한 폭풍우가 닥쳐온다고 크리크가 예언했는데 이를 묵살하고 비행하다가 추락사고가 일어나자 크리크의 명성이 전 미국에 알려졌다.

1936년 가을에는 이전에 없던 한파가 12월 중순에 닥쳐 과수원이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예보가 그대로 적중하고 있다. 이 적중률 때문에 세계의 보험회사ㆍ선박회사ㆍ항공회사ㆍ여행사ㆍ관광회사뿐 아니라 각종 대집회나 큰 행사의 날잡이까지 크리크에게 예보를 의뢰해 옴으로써 예보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흥미있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대소 선거가 잦은 미국인지라 유세일이나 투표일의 기상을 미리 알아 날을 잡으려는 일기예보 수요까지 크게 늘고 있었다. 곧 유세일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덜 모이고 또 투표율이 높고 낮고 또 투표할 때 보수ㆍ혁신을 선택하는데 있어 기상이 심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우리 한국처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상심리학이 선거행위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기에 예보 수요가 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투표하는 날 눈이 많이 내리면 후보 이름이 많이 알려진 보수파 인사의 당선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전통적 참여의식이 강한 장노인층은 눈길에 아랑곳없이 투표에 참가하는데 비해 반 보수성향을 가진 층은 주저앉는 율이 높기 때문이라 한다. 또 날씨가 쾌청해도 청년층의 기권율이 높아진다.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처럼 투표보다 야회로 빠져나가고 싶은 욕망이 앞서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투표날 비가오면 저소득층의 부녀자 투표율이 의례 떨어진다고 한다. 하나 밖에 없는 우산을 주인이 받고 나가 투표를 하고는 빠찡꼬집이나 오뎅집에 처박혀 있기 때문이라 한다. 또 어느 후보에게 꼭 찍겠다는 작심이 없어 투표장에든 사람에게는 그날 날씨가 적지않이 기표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이를테면 날이 음산하거나 을씨년스럽거나 몹시 추우면 호르몬이나 아드레날린의 분비, 혈액순환의 변화로 보수적인 사람보다 과격한 사람을 찍게 된다고 한다.

한 표 한 표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투표날의 기상인자가 좌우하는 표수 또한 무시 못 할 수 이인 것이다. 한데 이번 한국의 5기 지방선거는 날씨말고도 여당의 ‘안정론’ 대야당의 ‘심판론’, 또는 ‘북풍’ 대 ‘노풍’ 등 중앙정치적 구도다. 여기다 또 지역주의가 지배하는 영남과 호남지역에서는 해당 지역정당의 중앙당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지방선거의 이름으로 치러지는 중앙선거일 뿐, 진정한 의미의 지방선거는 아니다. 그러므로 유권자들이 유념해야할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들러리를 서서는 안된다. 오늘 투표가 ‘유권자 혁명’이 되기를 기대한다.

고운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