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사람처럼 변덕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비가 안와 가뭄이 지속되면 “저놈의 하늘에서는 언제나 비가 내리나”며 하늘을 원망하다가도 며칠 간 단비에 강우량이 조금만 많아지면 “이놈의 비는 언제나 그칠까”하고 하늘을 쳐다보니 말이다.

불과 보름 전까지만 해도 봄부터 지속된 장기간의 가뭄 속에서 광주시민의 식수원인 동복호와 주암호가 바닥을 드러낸다며 아우성을 치더니만, 두어 번의 장대비 속에 강우량이 300mm를 넘자 이번에는 침수피해가 극심하다며 비 그치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제 아침에도 저녁에 내린 비로 집 근처의 홍림천이 범람의 위기까지 다 달았다. 7～8년 전에도 홍림천 위에 걸쳐있는 다리 위로 세찬 물살이 넘쳐나 주민들의 통행이 제한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공무원들이 나서서 주민의 통행을 통제하고 있는걸 보니 비가 적지 않게 내린 것이 맞나보다.

옛날에 소금장수 자식과 우산장수 자식을 함께 둔 부모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똑같이 내린 비에도 근심걱정이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또한 세상살이 아니겠는가.

저지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삽과 양동이를 들고 피해 복구에 분주하고 있는 시간에 우리 부부는 모처럼 물 구경 한번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며 무등산 골짜기인 ‘동적골’로 향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동적골은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부부의 산책코스로서 일상화된 곳이지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그 골이 깊지 않아서인지 계곡에 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산고수장(山高水長)이라고 대체로 큰 산 밑에는 풍부한 물을 가진 계곡이 많기 마련이건만 광주의 어머니산인 무등산의 물길은 모두 동남쪽의 화순으로 향하여 지석천으로 흘러들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 부부는 동적골을 산책할 때마다 “언제나 비가 좀 와서 이 골짜기에 콸콸 흐르는 물을 구경할 수 있을까”라는 푸념을 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러니 광주지역에 15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고 하고, 주변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 넘쳐대는 물을 피하기 위해 감속 운행을 하는 것을 본 우리가 “동적골에 한번 가보자”고 의기투합 했을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산을 받쳐들고 동적골을 향하는 길에서 목격한 현상들은 새삼 자연의 위력을 실감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도로 양쪽에 묻힌 하수관로가 빗물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모양으로 도로는 물로 수라장이 되어 있는가 하면 어디에서 흘러 왔는지 나뭇가지와 쓰레기들이 도로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평소 때 같으면 이처럼 도로 위의 쓰레기나 교통위반 차량만 보아도 반드시 입맛을 다시는 내가, 이처럼 아수라장으로 변한 도로를 보면서도 마냥 즐거웠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동안의 기나긴 겨울과 봄 가뭄에 어지간히 나의 마음이 지쳐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저러한 상념 속에 빠져있는 동안 우리는 어느덧 동적골 입구에 도달하였다. 이미 증심사천(證心寺川)의 넘치는 물살을 통해 동적골이 어찌 되었을까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그날의 동적골은 온통 ‘물천지’가 되어 있었다.

물고랑 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주는 포근함은 정말 환상적이었으며 산보객을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그 곳에 심어 놓은 철쭉꽃밭의 물고랑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또한 어느 유명 폭포에 못지않은 정취를 안겨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 우리가 사는 곳은 좋은 곳이지, 이미 오래된 주택가여서 주차난도 없지 않고 매년 떨어져만 가는 집값에 속이 편한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좋은 산책코스를 지척에 두고 살기가 어디 쉬운 일이가. 우리는 앞으로도 다른 곳으로 이사 가지 말고 이곳에서 계속 살자며 뿌듯한 행복감에 젖어 주변의 물 잔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했던가. 삭막한 도시 속 시멘트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의 답답함은 비슷했던 것 같다. 동적골 이곳저곳에는 아침의 상쾌함 속에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구경하기 위해 이미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는 항상 산책길에서 만나는 낯익은 모습들도 또한 없지 않아 우리들은 모처럼만에 맞는 상쾌한 아침을 반가운 인사로 나눌 수 있었다.

오수열 <조선대 사회과학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