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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의 염천(炎天)인데도 장맛비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더위는 좀 덜한 것 같다. 더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먼저 마음에 걸린 게 있다. 장마철 비지만 질금질금 내리지 않고 폭우성을 지녔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자식 같이 기른 비닐하우스 작물들이 침수되어 헛수고가 되었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비온 뒤 무지개가 뜨면서 날이 벌어지듯이 저 농부들의 가슴과 살림살이에도 희망의 태양이 찬란히 빛나기를 바란다.

염량(炎凉)은 처처동(處處同)이란 말이 있다. 더울 땐 어딜 가도 덥고 서늘할 땐 모든 곳이 다 서늘하다는 말이니 인생사 걱정 없는 사람 없고 아무리 어려운 환경일지라도 살다보면 기쁨 한 가지 없지 않다는 뜻으로 비유되어 쓰이는 말이다.

덥다 덥다하면 더 덥다고 하면서 뙤약볕에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시는 농부와 열기구를 다루는 근로자들 생각하면서 이 여름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 세상이 여러 빛깔의 모습으로 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 거 같다.

일과 맞서 더위를 물리치는 이른바 ‘이열치열’의 전투적 자세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는 달리 산과 계곡으로 또는 바다로 더위를 식히려 가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이니 말이다.

예전 사람들은 더위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더위의 대처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겠지만 우선 시원한 계곡 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과 부채와 죽부인을 사용하여 더위를 식히는 방법, 그 외에도 냉면이나 과일 화채, 보양식 등 음식으로 이겨내는 등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런 생활 과정에서 하로동선(夏爐冬扇), 곧 여름날의 난로와 겨울날의 부채라는 고사가 생겨나기도 하였다. 부채는 여름에, 또 난로는 겨울에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 계절만 지나면 소용없게 되고 만다는 뜻에서 사람이 쓸모가 없어지게 되어 버림받은 경우에 쓰이는 말로 어의가 전성된 것이다.

이로 볼 때 여름철의 부채와 겨울철의 난로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소중하게 쓰였던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어쨌든 더위를 넘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흔히 쓰였던 말은 피서와 척서란 말이었다.

옛 사람들의 문집이나 글귀를 살펴보건대 이 두말의 비율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피서는 더위를 피한다는 말이고 척서는 더위를 씻는다는 뜻이니 전자는 수동적인 반면에 후자는 적극적임을 알 수 있겠다.

우리 지역 담양군 대치에는 조선후기 영천 이문이 건립한 척서정이란 정자가 있다. 이 정자는 물이 많은 계곡도 아니요 바람이 잘 통하는 산허리도 아닌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니 그 장소성에서 더위를 피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더위를 물리쳐 씻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피서란 말이 들어간 것으론 중국 청나라 때 강희제가 짓기 시작하여 건륭제가 완성하기까지 무려 팔십여 년간에 걸쳐 건립한 피서산장(避暑山莊), 곧 열하 행궁을 들 수 있겠다. 허베이성 승덕시에 위치한 피서산장은 중국 4대 정원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청나라의 별궁으로서 황제들이 더위를 피한 곳이었다. 참 요란하게 더위 사냥을 한 듯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더위를 피해 가는 피서를 할 것인지 아니면 더위와 맞서 무더위를 씻어버리는 척서를 할 것인지 말이다. 물론 그림자를 피하려면 그늘로 드는 것이 상책이듯이 더울 땐 시원한 곳을 찾아 쉬면서 재충전하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산고 없이 새 생명의 위대한 탄생이 있을 수 없듯이 계절의 속성이 가져다주는 예견된 장애를 핑계삼아 대사를 그르치는 어리석음은 범하질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사 마음에 달렸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곧 터질 찬바람, 그 가을바람에 토실토실 익어 영글 우리의 풍요로운 영혼과 삶을 위하여 우리 모두 심기일전, 척서하는 이 여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궁둥이에 땀띠 다소 나더라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샘의 고귀함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므로….

최한선 <전남도립대학 교수·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