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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경남 함양군에 있는 학사루에 올랐다. 그 곳은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이 함양현감으로 있을 때 지은 것으로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발단이 된 곳이다.

유자광(柳子光)은 훈구파의 중심인물로, 무오사화를 일으켜 사림파를 제거한 뒤 권력을 장악했으며, 남이(南怡), 강순(康純) 등이 역모를 꾀한다고 탄핵하여 제거하였다.

남이 장군의 시를 보면 ‘백두산의 돌을 칼에 갈아 없애버리고, 두만강의 물을 말로 하여금 마시게 하여 없애 버린다. 남자 나이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고 말하겠는가. 백두산석마도진(白頭山石摩刀盡) 두만강수음마무(豆滿江水飮馬無) 남아이십미평국(男兒二十未平國) 후세수칭대장부(後世誰稱大丈夫)’

남이 장군이 병조판서까지 올랐으나, 유자광의 무고로 1468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처형을 당하였다. 미평국(未平國)을 미득국(未得國)(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을 나라를 얻지 못하면’으로 고쳐 용상을 탐낸다고 무고하였기 때문이다.

유자광이 경상도 관찰사로 내려와 있던 어느 날 함양에 들러 김종직(金宗直)현감을 만나려 했으나, 김종직은 남이를 모함하여 죽인 유자광을 바쁜 공무핑계로 피해버리자, 유자광은 학사루에 올라 시 한수 남기고 떠났다. 김종직이 학사루에 걸린 시판을 보고 노하여 불쏘시개로 사용했고, 그 말이 유자광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김종직은 정몽주와 길재 문하로 후진을 양성하며 조선 유학의 맥을 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아버지의 김숙자의 학통을 이어받아 학문의 경향은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주안으로 하는 실제적 방면에 치중하였다.

김종직은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영남학파의 종조(宗祖)로서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성종의 각별한 총애를 받아 제자들을 관직에 등용시킴으로써 훈구파와 심한 대립을 일으켰다. 그는 일찍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었는데, 그가 죽은 지 6년후인 1498년에 제자 김일손(金馹孫)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이것을 성종실록 사초(史草)에 적어 넣었다.

글을 보면 노산(魯山)의 시체를 숲 속에 던져버리고 한 달이 지나도 염습(斂襲)하는 자가 없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서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와서 시체를 짊어지고 달아났으니,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

조의제문 내용은 항우(項羽)에게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초나라 의제(義帝)를 조상한다’는 제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꼬는 내용으로, 살해당하여 물에 던져진 단종에 대한 묘사와 유사한 면이 있어 세조와 후인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이극돈으로부터 김일손이 스승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었음을 듣고, 이를 세조의 찬탈(簒奪)에 대한 비유로 간주하여 대대적인 사림파 숙청작업에 착수했다. 유자광은 이 부분을 세조와 훈구공신을 비방한 증거로 들이댔으며, 그들에게 올가미를 씌웠다.

사초에서 조의제문을 언급한 권오복·권경유 등은 참형을 당하였고, 김일손은 서울 한 복판 광화문 앞에서 능지처참(陵遲處斬) 되었으며,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고 많은 문집이 소각되었다.

김종직에게 배운 적이 있고 과거를 보거나 벼슬을 할 때 지도와 자문을 받은 후학들은 대부분 ‘난언(亂言)’과 ‘붕당(朋黨)’죄에 걸려 죽거나 유배를 갔다. 일찍이 함양에 놀러가서 시를 지은 뒤 현판 했던 것을 현감인 김종직이 그것을 떼내고 불태운 일이 있어 원한을 갖고 있던 터였다.

김종직·김일손이 대역죄를 범했다고 연산군(燕山君)에게 고하자, 김일손 등의 심문과정에서 김종직 문하의 사림파 전체로 사건을 확대하고, 이들에 대한 죄명과 형량 책정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것이 이른바 무오사화로 연결된 악연이다.

하나의 조그만 악연이 큰 화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최치원 선생은 중국 양주(楊州)에 살면서 많은 시와 글을 남겼다. ‘추야우중’과 '계원필경’ 등이다.

전북 태인에도 최치원 선생의 유적인 호남 제일정자인 피향정(披香亭)과 호남의 대표적인 문화권인 칠보문화권이 있어 꼭 한번씩 가 볼만한 곳이다

강원구<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행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