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진다. 아직도 한낮의 폭염은 수그러들지 않았지만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대개 무더위는 말복을 고비로 기세가 꺾인다고 한다. 그리고 절기상으로 14번째인 처서가 23일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선선한 바람에 모기도 맥을 못 춘다는 이야기일 게다. 이제 가을이 멀지 않은 게 분명하다.

가을은 결실과 함께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이다.

말복이 지나자 집집마다 가을 김장거리로 무, 배추를 심을 준비로 분주하다. 반장댁 아주머니가 밭에 일을 나가다 우리 집에 들렀다.

"선생님, 김장 심을 준비 안하세요?"

"우리도 배추 모종을 부었는걸요."

내가 부은 배추 모판을 보여드렸다. 조르르 싹이 터, 예쁘게 자란 것을 보고 의외라는 표정이다. 모 부은 지가 1주일이 지났다. 일주일 정도 더 키우면 옮겨 심어도 될 것 같다.

"아니, 이렇게 많이 심어 어쩔 셈이지?"

"빈 밭에 김장거리나 넉넉히 심어보려고요."

"그래도 그렇지. 이게 몇 포기야?"

"500여 포기가 넘을 걸요."

"이 집은 김치만 먹고 살려나? 아예 김치공장을 차릴 모양이네!"

네 식구에 30여 포기면 김장을 하고도 남을 텐데, 누구 네랑 나누어 먹으려고 이렇게 많이 심을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요즘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돌자 김장거리 심을 준비를 하였다. 포토상자에 모판흙을 부어 배추씨를 부었는데 싹이 잘 텄다. 작년에는 씨앗가게에서 배추모종을 사다가 옮겨 심었다. 올해는 내가 직접 모를 부어보았는데 어린 싹들이 아주 예쁘게 자라고 있다.

이제 밭을 가는 일이 문제이다. 그동안 내버려두다시피 한 빈 터에는 풀이 사람 무릎 높이까지 자랐다. 관심에서 벗어난 자리는 풀이 주인행세를 한다. 무성하게 자란 풀을 뽑는 것도 한계상황이다. 트랙터로 갈아엎어야 할 성 싶다. 아주머니를 만난 김에 부탁을 하였다.

"아주머니, 재환씨 요즘 바쁘죠? 밭 좀 갈았으면 해서요."

"알았어요. 우리 애한테 시간을 내보라고 할게요."

아주머니 막내아들이 재환씨이다. 우리는 500여 평 텃밭을 가꾸는데, 재환씨가 봄가을로 두 번 밭을 갈아주고 있다. 올 봄에는 밭 전체를 트랙터로 갈아엎고, 관리기로 비닐 피복까지 해주었다. 고추, 고구마 등을 심어 잘 자라고 있다. 감자 캔 자리에는 들깨를 심었다. 이제 텃밭의 빈 자리를 갈아엎어 가을 김장거리를 심을 계획이다

나는 올해도 김장거리로 만물상을 차려볼 심산이다. 배추는 어린모가 어느 정도 자라면 옮겨 심을 계획이다. 김장 무, 총각무, 순무도 넉넉히 심을 자리를 마련했다. 갓 씨도 뿌리고, 쪽파도 심어 김장재료로 쓰려고 한다. 가을 시금치며, 처음으로 양파도 심을 계획이다. 생각 같아서는 마늘도 심어보려는데 아내가 한사코 말린다. 마늘은 씨 값이 비싸 잘못되면 본전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재환씨한테 전화를 하자 밭갈 준비를 하여 금방 왔다. 때맞추어 아내도 밖에서 볼일을 보고 돌아왔다.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다. 관리기로 골을 파고 판지를 만들어 놓고 보니 밭이 정리가 되었다. 아내가 음료수를 준비해왔다. 아내가 반장댁 아주머니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이게 무슨 난리대요?"

"나도 아까 선생님한테 말했는데, 장사할 것도 아니면서 뭐할 셈이냐고 했어요."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둘이서 주고받는 말이 죽이 척척 맞는다.

"힘은 힘대로 들고…."

"지금 들이는 돈이면 김장거리 사다먹고도 남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서는 아내는 이제 밭을 갈았으니 비닐 씌울 일, 모종 옮겨 심는 거, 씨 뿌리는 거, 김장할 일까지 걱정을 하며 말이 많다. 아무래도 벌려놓은 일이 힘이 벅찰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내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이 사람, 그래도 땅이 있으니까 심는 거야. 땅 놀려보라구! 풀밖에 더 자라. 그리고 몇 포기 더 심어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으면 얼마나 좋아. 매사 무슨 일을 돈으로 따져 어떻게 사나?"

아내도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내 말에 일리가 있다는 표정이다.

이웃집 느티나무에서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댄다. 나무그늘 밑에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계절은 이미 가을인지도 모르겠다.

만물상 우리 텃밭에서 가을 김장거리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가꾼 것으로 맛있는 김장을 담가 먹고, 내가 아는 여러 사람들에게 넉넉한 인심을 베풀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