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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0일
<고운석 칼럼>집 한 채 값이던 통신의 발달
입력시간 : 2010. 12.06. 00:00확대축소


1876년 벨(G.G.Bell)이 전화기를 발명한 후 전화는 이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통신시장의 역사는 구한말 최초의 정보통신 관장 정부조직인 우정사가 설립(1882년)된 것에서 시작한다.

1896년 한성(서울)과 제물포(인천)를 잇는 전신이 최초로 개통됐으며 1902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체신부가 출범하고 한·미간 최초의 국제 직통무선전화가 개통됐다. 1956년에는 최초의 흑백TV 방송이 실시됐으며 1962년에는 최초의 국산 전화기 '체신1호'가 보급됐다. 1975년에 가입전화시설 100만회선을 돌파했으며 1981년 개인이 직접 전화기를 구입할 수 있는 자급제가 시작됐다. 자급제 이전까지의 전화는 '재산목록1호'였다. 그만큼 널리 보급되지 않아 30년 전만 하더라도 전화한대 값이 아파트 한 채 값과 맞먹었다.

이렇다보니 통계청이 2008년 발표한 '통계로 본 60년'을 보면 전화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1955년 전화가입자는 3만9 천명에 불과했다. 장·차관이나 검찰간부, 국회의원 정도가 아니면 놓기가 힘들었다.

1962년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하면서 전화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전화를 사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하니 전화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전화를 둘러싼 부조리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정부가 전화 매매를 금지했다. 정치권과 언론이 들고일어났다.

실수요자가 피해를 본다는 논리였다. 결국 새로 가입하는 전화는 매매를 금지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백색전화와 청색전화로 나뉘게 된 배경이다. 전화색깔이 아니라 가입 대장의 색이 각각 흰색과 청색이었던 데서 유래했다. 이 조치 후 전화 값은 더 뛰었다.

1978년 청색전화 신청 대기자는 60만 명이었고 백색전화 한 대 값은 260만 원까지 치솟았다. 당시 서울시내 50평짜리 집값이 230만 원 안팎이었다. 전화 값 거품은 1978년 전자식 교환기를 들여오면서 비로소 꺼졌다.

1986년 한국이 세계에서 10번 째로 디지털식 전자교환기(TDX)를 독자기술로 개발하면서 전화는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서민의 통신수단으로 거듭났다. 지금은 국민 두 명 중 한 명 꼴로 보급됐다. 전화가 귀했던 시절 공중전화는 서민의 애용품 이었다. 국내 첫 무인공중전화기는 1966년 6월 1일 시내 중심가 10곳에 처음 설치됐다.

시내·외 겸용 공중전화기는 1977년에 가서야 선보였다. 전화 부스마다 시외전화를 걸기위해 줄을 섰다. 1982년 국내기술로 개발한 첫 시내·외 겸용 DDD공중전화가 나오면서 공중전화도 보편화했다. 같은 해 한국통신공사(현 KT)에서 떨어져 나온 한국이동통신서비스(현 SKT)가 무선호출 서비스를 개시했다. '삐삐'의 등장은 통신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삐삐의 시대도 채 20년이 못 갔다. 무선호출 서비스가 시작된 지 2년 뒤인 1984년 서울 구이동 광장전화국의 구석방에서 직원 32명으로 시작한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차량전화 서비스팀이 국내 처음으로 카폰을 상용화했다. 그러나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에 맞춰 서둘러 서울 및 수도권과 부산에서 휴대전화 서비스를 개시했다.

전국 서비스는 1993년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한데 15년이 지나면서 성능도 좋아지고 휴대폰 크기도 작아지고 가입자가 4500만 명에 달했다. 지금은 이도 부족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초조한 세상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스마트폰 알람에 잠을 깨고 스마트폰 뉴스와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출퇴근 때는 스마트 폰으로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보기도 한다. 또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을 시청하며 좋아하는 노래는 스마트폰 앱으로 편곡해 듣기도 한다. 스마트폰으로 스케줄을 확인하면서 일과를 시작하고 쉴 때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거나 앱을 검색한다.

퇴근 뒤에는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하다 잠이 든다. 많은 직장인들의 하루 일과다. 통신이 이처럼 발달하다보니 청와대 '대포폰 사건', 무분별한 문자 메세지 등은 공해가 되기도 한다.

고운석 <시인. 무진주문화마당 회장>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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