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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구 박사의 ‘감동의 나라 中國’(170) | 중국 문화 탐방 | | | 입력시간 : 2011. 03.21. 00:00 |   |
◆중국 최초의 성을 가진 염제릉(炎帝陵)
염릉현은 주주(株洲)시에 속하는 현이다. 강서성 정강산(井岡山)과 마주 접하는 곳으로 아주 멀다. 남창시에서 호남성 여유국 복월휘(卜越輝)부국장과 함께 4시간만에 도착하였다.
중국인들은 염황(炎黃)의 후손이라 말하는데, 염황이란 염제(炎帝)와 황제(黃帝)를 말한다. 염제는 성이 강(姜)이며, 황제는 희(姬)이다. 내가 성이 강(姜)이기 때문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다. 현장 등이 나와서 한국에서 강씨로는 처음으로 왔다고 반갑게 맞이해 주며, 점심까지 대접을 잘 받았다.
처음으로 왔기 때문에 높은 사람이 들어가는 문으로 들어가 정식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기온이 36도나 되는 날이었지만 양복을 입고 제사를 지냈으며, 휘호를 하라고 하여 글 한 점을 남기기도 하였다.
◆건륭황제와 도자기
청나라 건륭제(1735~1795)는 청나라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중국영토를 최대로 확장해 후대에 물려주었고 내적으로는 이민족간의 화합을 이끌어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리게 하고, 학자와 풍류객의 면모를 지녀 문화 창달에 힘썼으며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이민족인 만주족 지배자임에도 불구하고 한족의 존경까지 한 몸에 받은 성군이었다. 특히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황실 가마를 직접 관장하며 중국 도자기를 세계 최고로 만들었다. 이때 중국문물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귀족 사이에 ‘중국열풍’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들이 열광하던 중국문물 중 하나가 도자기였다.
건륭제는 중국의 자존심이고 중국인들에게 건륭제와 연관된 것이었다. 근대 서유럽 열강으로부터 받은 핍박과 설움은 건륭제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뜨겁게 한다.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으로 이화원, 원명원 같은 문화유산이 불탔고 그 안에 있던 문화재들은 영국, 프랑스 연합군에 약탈당했다.
특히 이화원은 건륭제가 다시 짓다시피 확장한 곳이고, 원명원에는 건륭제의 건축 취향을 반영,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 지은 ‘서양루(西洋樓)’가 있다. 2009년 2월 파리의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돼 중국과 프랑스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했던 12지신상 중 쥐와 토끼 머리 청동상은 원명원에 있던 것을 약탈해 간 것이다.
이 두 점의 중국 문화재가 사망한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소장품으로 경매에 나오자 중국의 여론이 들끓었다. 중국 정부는 약탈품이므로 당연히 조건 없이 반환하라고 주장하면서 이 유물의 경매는 또 다른 약탈과 다름없으며 중국의 주권과 중화민족의 존엄을 짓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매장 밖에는 수십 명의 중국인 유학생들이 유물반환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이 두 점은 각각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1400만유로에 팔렸다.
◆著者 姜元求 박사의 프로필
現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 .現광주여행문화원 회장/現 중국 심양. 남창 명예시민/ 前 전국시도관광협회연합회장/前 광주광역시관광협회장/ 前 광주권발전연구소장/前광주상아탑학원 원장 現 호남대학교 초빙교수
책 구입 및 연락처 :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062)652-8800
http://www.hanjoong.pe.kr/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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