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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손에는 칼이 있을수 있듯 분노는 영혼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분노가 없는 사람의 마음은 불구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호남사람에 대한 비하가 심심찮게 일어나 지역민들의 분노를 샀다.

처음의 말썽은 조영암의 '하와이 근성 시비'라는 필화사건이다. 조영암은 1959년 '야담과 실화'라는 잡지에 전찬근 이란 필명으로 '전라도는 간휼과 배신의 표상'이라고 묘사해 잡지가 폐간되는 등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다음은 1979년 소설가 오영수가 쓴 '특질고'가 또 한 번 분노의 불씨가 됐다.

그는 전라도 사람에 대해 '신의가 없다' '표리가 부족하다'는 등 허무맹랑한 글을 썼다가 결국은 작가의 반성으로 일단락 되기는 했지만 호남사람의 마음에 앙금만 남겨놓았다. 하지만 이곳 호남사람들은 나라가 침략당해 위태로울땐 몸바쳐 싸우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해선 앞장선 사람들이다. 1980년 신군부의 정권 장악 음모에 맞서싸운 사람들도 호남사람들이다.

한데 5·18민주화운동 서른 한돌을 오늘 맞고 있다. 31년 전 5월 18일 일요일 0시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광주 각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하면서 시작된 사태는 27일 화요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접수하면서 10일만에 상황이 종료됐다.

이 기간 광주시민은 진압군에 대항하면서도 생활용품 사재기를 하지않고 높은 연대의식을 보여주었다. 길지않은 기간이었지만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힘든 시민 저항의 승리였다. 중앙지 일부와 광주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19일부터 23일까지 사설란을 아예 없앤 무(無)사설로 광주의 저항에 힘을 실었다.

신군부의 압박을 받고 집필해 계엄당국의 검열을 거친 관제사설을 싣지 않기 위해서였다. 엿새만에 게재된 중앙지 등의 사설은 '유혈의 비극은 끝나야 한다'로 신군부가 사태를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군부의 무자비한 압박과 군 검열속에서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모두가 자책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관통하는 정신의 핵심은 불법 부당한 권력에 맞선 시민들의 저항권 행사다. 호남의 정신이요 광주의 정신은 1987년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해 광주 유혈사태에 책임이 있는 신군부 세력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5·18문제 해결과정에서 정립된 진실규명, 책임자처벌, 명예회복, 피해보상, 기념사업 등 '5원칙'은 국가폭력을 극복한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평가받는다.

2011년 광주는 이제 아시아의 대표적 민주 인권도시로,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시민저항의 상징도시, 민주주의 창조도시로 명성을 얻고있다. 5·18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을 통해 독재를 쓰러뜨리고 민주화를 이룩해 1987년 국민의 선택을 받은 자유민주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와 민주화세력의 대결로 점철했던 운동의 시대는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길게 남겼다.

민주화 이후에도 자신들의 편향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민주 대 반민주' '민주 대 독재'인양 포장하는 행태도 여전하다.

하지만 5·18 이후 한 세대를 맞은 지금,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광주의 질적 성숙과 함께 선진화로의 도약에 모두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또 최근 조영암이나 오영수 같은 망령이 나타나고 있다. 극우단체가 5·18 유네스코 등재에 방해공작활동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고운석<시인. 광주시 남구발전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