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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이 파랗고 그를 닮은 강물 또한 푸르른 가을이다. 들녘엔 황금물결이 출렁거리고 오곡의 성숙한 자태가 한껏 풍요로워 금세 뻥, 토독 터져버릴 것만 같다. 이럴 때면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세운 고결한 선비의 인품 같은 면앙정을 찾아보자.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소재한 면앙정은 전라남도기념물 제 6호로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골기와 팔작지붕이다. 정자의 주인송순은 담양군 봉산면 기촌마을 출생으로 자는 수초(守初), 성지(誠之), 호를 면앙정(면仰亭), 기촌(企村), 시호는 숙정(肅定)인데 신평인이다.

눌재 박상과 육봉 박우 형제 및 지지당 송흠의 제자로 중종 14년(1519)에 별시문과 을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른 뒤 몇 번의 곡절은 있었으나 비교적 순탄한 관직 생활을 하였는 바 홍문관 부응교(副應敎), 직제학(直提學), 예문관 응교, 도승지(都承旨), 대사헌, 이조참판, 한성판윤, 의정부 우참찬 등을 지냈으며 중종 실록편찬에 참여하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었다.

1550년 진복창, 이기 등에게 몰려 충남 서천으로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지만 면앙정은 인품이 너그럽고 온유하였기에 무난한 일생을 보낼 수 있었다. 1533년 김안로의 세력이 조정을 장악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면앙정을 짓고 달관과 관용의 도를 수양하였다. 면앙정을 방문하여선, 우리는 면앙정 선생의 이러한 인품을 배워야 할 것이다.

1569년 의정부우참찬겸춘추관사(議政府右參贊兼春秋館事)를 지내고 치사(致仕 : 임금께 벼슬을 되돌려 드림)하고 귀향하니 그때 나이 77세였다. 본격적 문학생활은 이때부터 시작 되었는데 면앙정은 이때 중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사인 <면앙정가>를 비롯하여 자상특사황국가(自上特賜黃菊歌) 등 시조를 여러 편 남겼는데, '면앙집'에는 그 외에도 잡가 2편, 치사가(致仕歌) 3편, 비석가(悲惜歌), 면앙정 단가 등 7편, 오륜가 5편 등이 있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어

나한칸 달한칸 청풍한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특히 이 시조는 전원시조 또는 강호시조의 백미로 꼽힌다. 그의 문하에 제봉 고경명, 고봉 기대승, 백호(白湖) 임제(林悌) 등이 있다. 송순은 면앙정에서 면앙정시단을 이루어 많은 학자, 가객, 시인들의 창작 산실을 만들었다.

정자 안에는 퇴계 이황, 하서 김인후, 백호 임제, 석천 임억령 등의 시편들이 판각되어 걸려 있다. 석천 임억령, 제봉 고경명, 사암 박순, 하서 김인후의 <면앙정 삼십영> 곧 면앙정 주변의 승경을 두고 읊은 시가 삼십 수 있으며 기대승의 <면앙정기>, 임제의 <면앙정부> 등도 유명하거니와 면앙정의 3자시 또한 호탕하기가 그지없다.

면유지(면有地 : 굽히면 땅이요)

앙유천(仰有天 : 우러르면 하늘이라)

정기중(亭其中 : 그 가운데 정자를 지었으니)

흥호연(興浩然 : 호연지기의 흥이 나는구나)

초풍월(招風月 : 바람과 달을 맞아들이고)

읍산천(읍山川 : 산빛과 냇물도 맞아들이자)

부여장(扶黎杖 : 지팡이 짚은들 무슨 흠이 되겠는가)

송백년(送百年 : 한 세상 멋지게 보내면 그만이지)

한편, <면앙정가>는 그 표현 기법과 시상의 전개, 향토애의 반영, 어휘 구사력 등이 뛰어나 강호가사의 백미라 일컫거니와 이는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에 많은 영향을 주었는 바, 이 노래는 면앙정과 관련한 한시들이 자력(資力)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학교가 날로 오늘도 무사히 식 가둠의 공간으로, 사제 간이 자꾸만 감시와 관리의 역할로 변해가는 오늘의 비극적인 세태에서 면앙정의 회방연과 관련한 일화는 우리에게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면앙정이 과거에 급제한 지 60년이 된 어느 날(1579), 낙향해 있는 늙은 스승을 찾아 회방의 잔치를 열어드린 제자들이 있었다.

그 이름만 들어도 전국을 대표한 제자들은 다름 아닌 기대승, 임제, 정철, 고경명 등으로 스승을 가마에 태워 직접 가마를 메고 면앙정 정자에서 집으로 모셨던 일, 오늘따라 참 그립다. 사제 간의 사람 냄새 풋풋한 그 아름다운 파티가….

최한선<전남도립대 교수ㆍ전남문화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