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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높고 맑은 가을 밤, 특히 보름달이 한없이 자비로운 모습을 보일 때면 우리 동네 누나들은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곤 했다. 우리 동네는 120여 호가 넘은 큰 마을이었기에 많은 자녀를 두었던 당시, 줄잡아 한 집에 십대의 누나뻘 되는 여자들이 적어도 두서너 명은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강강술래를 할 때면 수많은 누나들이 예쁘게 단장하고 달빛 아래 뽀얀 흰 살의 자태를 뽐내곤 했다.

그 당시엔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말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바람 불고, 운해 끼고, 왼 갖 나무 춤을 춘다, 겨우 천자 읽었다고, 나라 보양 들어가세, 강강술래, 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 돌래돌래 놀아라"하면서 동네 앞 운동장을 뛰면서 춤을 추던 누나들, 때론 빠른 음악과 율동으로 때론 승무를 추듯 느긋한 몸놀림과 음악으로 부모님이 출타하고 안 계신 나의 애간장을 녹이곤 했다.

지금은 모두 환갑을 훨씬 넘긴 할머니가 되었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는 향긋한 분 내음 물씬 풍겼던 이팔청춘의 누나들,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은 나의 정서 안정과 낭만적 사유를 풍부하게 하도록 만들어주었던 분들이었다.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세기(世期)요 절기인 설, 대보름, 단오, 백중, 추석, 9월 9일 밤에 연행되었으며 특히 팔월 추석날 밤에 대대적인 판이 벌어졌던 민속놀이 중 하나이다.

그 뿐만 아니라 강강술래는 노래(시), 무용, 음악이 삼위일체의 형태로 이루어진 원시종합예술로서 한국 특유의 발라드 댄스였으며 한 사람이 설소리(앞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뒷소리를 받는, 선후창의 형태로 불리어지며, 노랫소리에 맞춰 많은 여성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추었던 춤이었다. 때맞춰 북이나 장구 등 전통적인 농악기로 반주를 하여 흥을 더하노라면 놀이를 하는 쪽이나 놀이를 구경하는 쪽 모두가 하나가 되어 물아일체의 황홀경에 빠지곤 했던 단체 놀이이기도 했다.

또한 강강술래는 초저녁에 달이 뜰 때 시작하여 달이 서산에 기울 때까지 계속 놀아질 정도로 흥겹고 또한 역동적이었으며 설소리를 하는 사람의 노랫가락의 빠르기에 따라 긴 강강술래, 중 강강술래, 잦은 강강술래로 구분된 음악이다. 그러면서 노래의 빠르기에 따라 손을 잡고 뛰는 여성들의 발놀림도 빠르기가 달라지는 율동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는 형태는 같으면서 다만 빠르기를 달리하는 것에 반해서, 남생이 놀이, 고사리 꺾기, 청어 엮기, 기와 밟기, 덕석 말기, 쥔 쥐새끼 놀이, 대문 놀이, 가마등 밟기, 수건 찾기, 봉사 놀이 등 다양하며 부대적인 놀이들이 중간 중간에 공연되는 연희였다. 이러한 강강술래는 밤을 새워가며 가사를 바꾸어 부르는 노랫말은 여성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는 민중의 애절한 시로서 매우 문학성이 풍부한 구비문학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강강술래는 무슨 뜻일까? 언제 본격적으로 공연되었을까, 이와 비슷한 다른 놀이는 없는가, 왜 했을까 등 궁금한 것이 참 많다. 강강수월래(江江水越來), 곧 강, 강물을 건너온다, 강물을 건너온다,

가등청정 일본군이 강물을 건너온다의 뜻으로 새기면 임진왜란과 관련된 군대놀이가 된다. '강강수월래'라고 느린 곡조로 부르며 느린 춤을 출 때는 적의 동향이 잠잠할 때이고, '강강술래'라고 빠른 곡조와 빠른 동작을 할 때는 적의 침입이 포착된 경우에 그렇게 했다는 주장이 있어 흥미롭다.

이와 비슷한 놀이가 월월이청청(越越而淸淸)이라는 놀이로 경상도 지방에 있다. 역시 달밤에 하는 놀이인데 음악이나 동작 등 강강술래와 비슷하다. 이 역시 넘어온다(월), 넘어온다(월), 가등청정(청청) 일본군이 넘어온다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어 임진왜란 당시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이끌었던 일본군과 관련된 군대놀이의 하나임을 알게 한다.

이와 같이 전쟁과 관련하여 생각해보면 남생이 놀이나 청어 엮기 등 강강술래를 하면서 보여주는 여러 부대놀이는 모두 전술의 한 장면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창안한 사람은 이순신 장군이 된다. 그쪽으로 생각을 더 가져가다 보면 이순신 장군이 아군의 수적 열세를 감추기 위해 달밤에 춤을 춤으로써 그 그림자까지 실제 군사로 보이도록 했다는 설명까지 덧붙여진다.

물론 강강술래가 이순신이 창안한 군대놀이일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훨씬 앞선 시기부터 달밤에 벌였던 민속놀이, 곧 농경사회에서 파종과 추수 이후에 남녀가 한데 얼려 벌였던 통과의례나 주술적 성향이 짙은 제의 같은 데서 유래한 민속의 하나라 여겨진다.

아무리 쳐다봐도 한마디 불평 없는 저 원융(圓融)의 달, 충만한 포만과 무량한 자비의 달빛 타고 남북이 소통하고, 도시와 농촌이 하나 되는 그런 날을 기대한다.

최한선<전남도립대 교수ㆍ광주예총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