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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석칼럼>국산 화장품과 성형술 | | | 입력시간 : 2011. 11.17. 00:00 |   |
화장품의 정확한 기원을 찾기 위해서는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화장술은 인류 최초의 여인 이브가 탄생한 지 15년도 채 안됐을 무렵부터 등장했다. 이집트 여인들은 콜을 사용하여 눈썹과 눈가를 검게 칠했다.
당시 부유층 여인네들은 머리 위에 향료가 든 원추를 얹고 파티에 참석했다. 파티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원추에서 끈적끈적한 포마드 기름같은 것이 서서히 녹아내려 머리와 어깨를 뒤덮었다. 로마의 여인들도 화장에서 예외가 안된다.
「오르나트릭스」라는 전문 노예(당시의 미용사)가 주인마님의 이마와 팔에 분필과 백연(白鉛)을, 입술과 빰에는 황토·모자반·포도주 찌꺼기 등을 발라 주었다. 또한 눈가에는 안티몬 가루를 칠해 주었다.
그런데 미용학원이 1867년 프랑스 파리에 「에나멜을 칠해주는 라셀」이 문을 열었다.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자의 욕망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의사는 성형수술까지 생각해냈는데, 1914년 시카고의 외과의사 찰스 밀러가 행한 기상천외한 시술이 지방신문에 대서특필 되었다. 밀러는 귀 절단 수술을 시작으로 새롭고도 특이한 여러가지 시술을 감행했다.
그가 행한 수술들은 이를테면 너무 큰 입 줄이기, 벌어진 콧구멍 줄이기, 보조개 만들기 등등 다양했다. 미국인들은 이 진기한 수술법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후 이름난 의사들이 밀러의 뒤를 이어 성형수술의 길을 찾아 나섰다. 프랑스에서 최초로 성형수술을 한 사람은 피부과 의사인 노엘박사이다. 당시 그녀의 시술행위를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을 보면 그녀의 하트 모양의 입과 맨손, 장난스럽게 쓴 모자, 피둥피둥한 엉덩이에 둘러진 새하얀 앞치마 등은 맛좋기로 소문난 제과점의 수석 요리사를 연상시킨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교정 외과수술이 발달했다.
이는 전쟁 부상병들의 끔찍한 수족절단을 방지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몇 년 전에보다 진보된 성형수술이 시작되는데 당시 유명한 성형외과로는 영국의 헤롤드 질즈와 프랑스의 레옹 뒤 프르망텔을 친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의술이 선진국 수준이라 중국, 태국, 필리핀 등지에서 의료 관광객이 몰려오고 있다. 5천만 원짜리 성형수술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남편이 딸 친구가 온줄 안다고 한다. 진짜 이정도다보니 화장품도 눈부시게 발달 수출을 하고 있는데, 중·소업계 화장품까지도 선진국 수준이다.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는 "2015년까지 국내 화장품업계 10위에 오르고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한다. 이잔해 약 200억 원의 매출을 올린 화장품사업을 강화해 몸집을 5배 이상 키우겠다고 한다. 그는 "생활용품을 만들던 기술력을 화장품에 접목해 독특한 정체성을 갖는 화장품 브랜드로 성장시켜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2009년 첫선을 보인 화장품 브랜드 오앤(O&)도 '한경희(영어명 HAAN)'로 변경했다. 브랜드가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경희 화장품은 이미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분당 5000번 진동하는 기능이 있어 화장을 빨리 잘 먹는 '진동 파운데이션'이나 자동으로 눈썹을 말아주는 '스핀마스카라' 등은 홈쇼핑과 면세점 등에서는 업성서 못 판다.
진동파운데이션은 6월 출시 이후 1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홈쇼핑을 통해 화장품을 선보일 예정이라니, 의료관광객이 몰려오듯 국산 화장품이 세계를 점경했으면 좋겠다.
고운석< 시인 광주시 남구 발전협의회장>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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