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뉴스

관직에 있는 이를 위해서 두 마디 말이 있으니 오로지 공정하면 명지(明智)가 생기고 오로지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 합니다. 한데도 성실과는 상관이 없이 반대로 청탁과 연줄로 쓰다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다. 그래서 친족끼리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지도 못하게 한 상피법이 다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이전(吏典)’에는 대공복(아홉달 복) 이상의 상복을 입는 본종(성과 본이 같은 친척)이나 사위, 손자사위, 손위 손아래 매부와 시마복(석달 복) 이상의 상복을 입는 외가 사람들과 동서, 손위·손아래 처남 등은 같은 부서에 근무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정부나 의금부·사헌부·사간원, 문·무관의 인사권이 있는 이조·병조 등은 훨씬 엄격해 4촌 매부·4촌 동서까지 포함시켰다. 피고와 일정관계가 있으면 재판관도 맡지 못했으며 거자(응시자)와 일정한 관계가 있으면 시관(시험관)도 맡지 못했다.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선종 9년(1092) 11월조에는 “오복(五服) 친족끼리 상피법을 정했다”고 밝혀 상피제가 1,000년 이상 된 법임을 말해준다.

이현보가 쓴 ‘금산 군수 이공(李公) 묘지명’에 따르면 광평대군의 후손인 이중휘는 현종시절 과천 현감으로 많은 공이 있었지만 감사와 상피관계라는 이유로 체차되었다. 정승도 상피법 적용 부서였지만 효종 1년(1650) 8월 좌의정 조익과 사돈인 이시백이 우의정에 제수되었을 때 영의정 이경여가 청나라와의 관계를 들면서 “권도(임시방편)를 쓰지 않을 수 없는 듯 하다”고 편법으로 상피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조선후기 이유원은 ‘춘명일사’의 ‘대관은 상피하지 않는다’라는 글에서 “이것이 곧 관례가 되었다”고 적고 있다. 효종이후 의정부 정승들은 상피제에서 제외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위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홍봉한·홍인한 형제 정승이 안국동에 사는 것을 두고 “망국동에 망정승‘ 영조실록(46년 3월 22일자)”이란 동요까지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세도정치 때 상피제는 완전히 무력화 되면서 부정부패는 일상사가 되었고 나라도 망했다. 그런데 지난달 13일 한 언론에 보도된 사진 한 컷이 유난히 독자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의원이 자신의 휴대전화에 찍힌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메시지에는 행정고시 일반행정직 수험생의 수험번호와 청탁내용이 적혀 있었다. 특히 “3차 면접만 남았는데 행자부쪽 면접 관련 부서나 면접관에게 부탁 좀 힘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청탁내용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 의원이 자신의 수첩에 수험번호를 옮겨 적는 모습도 기자에게 포착됐다. 이른바 ’행정고시 면접 청탁 문자‘로 이름 붙여진 이 ’사건‘은 검찰로 공이 넘어갔다. 한 시민이 지난달 25일 “청탁한 사람은 고위공무원이 될 자격이 없으니 불이익을 주거나 퍼벌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기 때문,

이 사건은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된 행정고시에도 힘있는 사람의 ’백‘을 이용하려는 비뚤어진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지난해 9월 세상을 공분케 한 유명환 외교통상부(당시) 장관 딸 5급 특별채용 특혜사건도 연줄문화의 병폐를 보여 준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인적 네트워크의 노동시장 효과 분석’ 보고서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학연과 지연, 혈연 등 연줄문화에 적어 있음을 계량적으로 보여준다.

2003~2007년 일자리를 구한 6,165명을 표본 집단으로 조사한 결과 3,477명(56.4%)이 가족과 친지 등 인맥으로 취업한 것. 청년세대(15~29세) 체감실업률이 11.3%에 달할 정도로 취업이 ‘하늘에 별따기’인 상황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연줄문화는 역사 발전을 더디게 하는 퇴행적인 문화일 뿐이다. 그래서 옛 상피제도 일종의 사회적 근친상간으로 보고 금지했던 것이다. 한데 최근 금감원 간부들이 관련 분야에 2년 이상 취직하지 못하게 한 법률 시행직전 대거 사임하고 금융회사로 향했다는 소식이다. 나라가 망하지 않을 가 걱정이다.

고운석<시인. 광주남구 발전협의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