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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事成語-담하용이(多岐亡羊)등 2편(247회) | | | 입력시간 : 2012. 09.03. 00:00 |   |
◆담하용이(談何容易) 談:말할 담. 何:어찌 하. 容:쉬울 용. 易:쉬울 이
무슨 일이든지 입으로 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쉽지 않으므로 쉽게 입을 여는 짓은 삼가야 한다는 말.
동방삭(東邦朔)은 전한(前漢) 중엽 사람이다. 그는 정직하며 유머를 좋아 했다. 무제(武帝)가 전국의 인재를 모집했을 때 고향의 염차(厭次:산동성)에서 수도 장안으로 나가 황제에게 글을 올렸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상시랑(常侍郞)으로 발탁되었다.
무제는 장안 근처에 황실 전용 사냥터 '상림원(上林苑)'을 만들려고 했다. 동방삭은 국고를 비게 하고, 백성의 생활 밑천을 빼앗는 짓이라며 반대했으나 무제는 듣지 않았다. 그는 부국 강병책을 건의했지만 채택되지 않아 '비유 선생론(非有先生論)'이라는 풍자문을 써서 간했다. 거기에는 비유 선생과 오왕(吳王)이라는두 가공 인물이 등장한다.
비유 선생은 오왕을 섬긴 지 3년이 되지만, 조금도 정견을 발표하지 않았다. 오왕이 어이가 없어서 "뭔가 말을 해주시오"하고 요망했지만, 선생은 여전히 입을 다물었다. 오왕은 안달이 났다.
"말해 주시오. 뭐든 듣겠소."
"좋습니다. 입을 여는 것은 간단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간언하다 죽은 충신의 이름을 나열하고는 또 거듭 말했다.
"입을 열기가 어찌 그리 쉬운 일이오!(談何容易)
그는 계속해서, 알랑거려 중용된 인물, 임금이 포악했기 때문에 세상을 피한 인물의 이름을 들어 충신을 멀리하고 소인을 등용한 어리석음을 말했다.
"입을 열기가 어찌 쉬운 일이오!"
선생은 또 현자가 명군을 만나 서로 도와 가며 나라를 일으키고 융성케 한 사례도 들어 군주로서의 마음가짐을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오왕은 감동하여 이후부터 선생의 간언을 받아 들였다. 그리하여 정치를 개혁하고 오나라를 융성으로 이끌었다는 내용이다.
[출전] 《漢書》<東邦朔傳>
◆대공무사(大公無事) 大:큰 대. 公:공변될 공. 無:없을 무. 事:일 사
지극히 공정해 사사로움이 없음. 대의를 위해 사사로움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함.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 평공(平公)이 신하 기황양(祁黃羊)에게 물었다.
"지금 남양현(南陽縣)의 현장(縣長)이 공석중인데 누구 마땅한 사람이 없을까."
기황양은 주저 없이 말했다.
"해호(解狐)가 좋을 것입니다. 그 자라면 훌륭히 직책을 수행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자 平公은 매우 의아하다는듯이 물었다.
"아니,해호라면 경의 원수가 아닌가. 왜 하필이면 자신의 원수를 추천하는고."
"아닙니다. 공께서는 「마땅한 사람」을 물으셨을 뿐 그가 저의 원수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平公은 호래를 남양현의 현장(縣長)으로 보냈고 그는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얼마가 지나 平公이 또 물었다.
"현재 조정에는 법관(法官) 자리가 비어 있네. 누가 적당할까."
그러자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인 기오(祁午)를 추천했다. 이번에도 平公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祁午라면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 자기 아들을 추천하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러나 이번에도 기황양의 대답은 똑같았다. 물론 기오는 훌륭하게 일을 처리했다.
孔子는 기황양이야말로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사람의 평가가 재능보다는 '관계'에 따라 좌우되곤 한다. 大公無私는 커녕 대사무공(大私無公)인 셈이다.
[출전]《晉書》
출처/ http://peerhs.com.ne.kr/gosa/go1.html
파인뉴스 기자 470choi@hanmail.net 파인뉴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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